세계는 브랜드 파워의 시대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를 담고 있는 시장의 막강한 권력이다.

미시시피 강 하구의 작은 항구 도시 뉴올리언스는 흑인 노예 매매시장으로서의 악명이 높았지만 지금은 20세기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이끈 재즈의 발흥지로 도시 그 자체가 관광 상품이 되었다.

한 때 대영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항구였지만 대영제국의 몰락과 함께 침몰한 리버풀은 비틀스와 리버풀 FC 축구팀, 그리고 대대적인 도시 문화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도시로 거듭 태어났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관광국가라고 하기에는 많은 면에서 미흡했다.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중국이나 유럽만큼 제국의 위용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경쟁력 있는 유적이나 유물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알프스나 그랜드 캐넌 같은 압도적인 관광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개발 시대기인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은 가슴 아프게도 이 땅의 젊은 여성들을 매매춘으로 몰아 넣은 ‘기생관광’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대의 어느 문교부장관은 이 매매춘 행위를 애국적이라고 칭송하는 어이없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1980년대와 90년대엔 동대문 시장의 저가 의류와 화장품, 그리고 한국형 대중목욕탕이 일본과 동남아시아, 나아가 한중 수교 이후의 중국 여성층의 인기를 끌며 관광산업을 선도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새로운 천년이 용틀임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모델의, 본격적인 관광국가로 발돌움한다. 그것은 한국의 TV드라마와 케이팝에 매료된 새로운 신인류층이 대거 인천공항에 내리면서 시작된다. 한류라는 새로운 국가 브랜드가 관광산업까지 경악할 만한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한류의 과실 거의 대부분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지만 서울이 독차지했고, 경기도는 여기서도 들러리 역할도 채 맡지 못한다. 하지만 21세기 문화 대한민국의 최후의 국가 브랜드로 부상할 어떤 무엇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을 고르고 있다는 것이 경기도 역전극의 한줄기 희망이다.

나는 대한민국 문화 브랜드의 궁극적인 킬러 컨텐츠는 DMZ라는 세 음절의 단어에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가, 155마일 휴전선에 걸쳐 상하폭 4km의 방대한 공간에 펼쳐진 비무장지대는 남북 평화무드의 조성과 함께 그 자체로 생태-문화-역사의 위대한 현장이며 보고 느끼고 경험할 만한 컨텐츠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가슴 아픈 20세기 한반도 역사가 남겨 놓은 이 공간을 우리는 지구촌의 모든 이들과 함께 슬픔을 넘어서는 공감과 미래를 향한 화해와 평화 의지로 불타는 이상적인 문화의 깃발을 펄럭이게 해야 한다. 그리고 DMZ를 넘어 한반도에서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교류를 꾀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개척하여야 한다.

조금은 이기적인 표현이지만, 경기도는 북부 지역의 발전과 경기도의 정체성의 확장을 위해 DMZ를 문화적으로 선점하는 전략적인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도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당연히 경기도의 것이라고 지레 단정하고 머뭇거리다간 눈뜨고 코 베이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광역 자자체로서 경기도가 자신의 문화적 브랜드를 소유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그것이 DMZ이다.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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