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생들을 위한 한 시민단체의 교양 강좌에서 '클래식음악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의뢰 받았다. 초청하신 분의 뜻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서양 예술음악을 알기 쉽게 설명해달라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필자는 서양과 동떨어진 문화권의 음악들과 대중음악, 이를테면 한국의 판소리와 전통 아악, 인도네시아의 가멜란(gamelan) 음악, 인도 전통음악, 프레디 머큐리, 비틀즈 등의 팝송 등을 중심으로 담론을 전개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강의 내용에 당황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 하였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는 사람이 교향곡이나 오페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왜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을까?”

뜬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물론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나의 의도였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널리 사용되는 “클래식음악(또는 줄여서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표현하는 일반적 의미가 매우 편협하기도 하거니와, 방송이나 서적에서 이 말이 분별 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느껴온 터라 객기가 발동되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클래식음악이란 교육받은 중산층 이상이 향유하는 18-19세기의 서양 예술음악을 한정해서 일컫는다.

일단 “클래식(classic)”이란 “고전”을 뜻한다. 이는 본디 글로 된 작품의 고전을 뜻하는데, 좁은 의미로는 고대 희랍과 로마 문학의 걸작을 일컫는다. 조금 넓게 범위를 상정한다면 클래식(고전)이란 고대로부터 비교적 최근까지의 문학작품 중 끊임없이 읽히고, 연구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들을 뜻한다. 그러니까 당대에는 지방언어로 쓰여졌다고 천대받던 중세의 단테의 ‘신곡’이나 초서의 ‘캔터베리이야기’도, 비교적 근래인 20세기에 쓰여진 카뮤의 ‘이방인’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끊임없이 읽히고, 연구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니 고전 즉 클래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클래식 즉 고전이란 역사 서술과 비슷하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했던 E. H. 카의 말처럼, 클래식이란 오늘날 끊임없이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해내는 과거의 산물 더하기 그것의 되새김이 이루어내는 게슈탈트이다.

클래식의 의미를 이렇게 상정한다면 소위 ‘클래식음악’이라 일컫는 작품과 행위도 그 의미가 명료해진다. 흔히 클래식음악이라고 명명되는 모차르트나 바흐의 음악이 연주되더라도 그것이 오늘날의 청중에게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해 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클래식 음악이라고 여겨질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널리 끊임 없이 연주되고, 연구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는 한국 전통음악, 인도네시아 가멜란 음악, 인도 전통음악, 비틀즈와 프레디 머큐리의 팝송 등이 오히려 클래식음악이라고 불리어질 이유가 분명하다.

어떤 특정한 음악은 클래식에 속하고 다른 음악은 그것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클래식음악과 비클래식 음악의 경계가 불분명하기도 하지만 특정 시기의 서양 예술음악만을 클래식음악이라고 규정짓는 우리의 무비판적 태도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클래식(고전)이란 본디 정경(canon)에 속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에게 정경에 속한 음악 즉 클래식음악이란 유럽이나 미국식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 인정하는 유럽과 미국식의 엘리트 음악을 뜻해왔다. 그 정경을 규정해온 이들의 편견과 아젠다를 그대로 답습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감동과 의미를 끊임없이 생산해주는 음악 작품과 음악 행위들을 클래식음악의 범주에 넣어 생각하는 보다 넓은 주체적 관점이 필요하다.

양승열 음악연주학 박사, 열정악단 대표 겸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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