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서, 잠이 안 와서, 피곤해서 등등을 이유로 매일 술을 드시는 아버지, 괜찮은 걸까요?”

퇴근 후 한 잔 술이 달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술을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고단한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도 훌훌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술을 마셔야 잠이 잘 오고 소화도 잘된다며 반주를 습관처럼 일삼기도 한다. 자녀 입장에서는 그런 부모님의 건강이 염려되면서도 술이 주는 이점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알코올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이완시키고 보상과 쾌락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시켜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든다. 문제는 우리의 영리한 뇌가 술을 마셨을 때의 쾌감을 다시 얻기 위해 계속 마시게 한다는 데 있다.

만일 과음을 하지 않더라도 습관적으로 술을 마신다면 이미 뇌가 조건반사를 통해 술을 찾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알코올에 중독된 뇌는 술을 마시기 위해 갖가지 구실과 핑계를 지어내고 술이 없으면 허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금주를 굳게 결심했지만 “딱 한 잔만…” “오늘만 마시고 내일부터는 마시지 말아야지”라면서 술의 유혹 앞에 쉽게 무너지는 이유도 습관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에 있다.

알코올은 마약처럼 엄연한 의존성 유발 물질이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매일 술을 마시면 내성이 생기고 주량이 늘게 된다. 흔히 술을 마시다 보면 주량이 는다고 하는데, 이는 술이 세진 게 아니라 알코올에 내성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한두 잔이면 족했지만 내성이 생기면 이전과 똑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고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술에 의존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뻐도 술, 슬퍼도 술, 힘들어도 술을 마시는 관대한 음주문화로 인해 음주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경우가 많지 않다. 혼자 힘으로 술을 조절해보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반복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이들도 허다하다. 심지어 알코올 의존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음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다.

처음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위해 술을 마셨던 사람은 없다. 그들 대부분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애주가였다. 지금 당장 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알코올 의존증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부모님과 자신의 음주습관을 한번 점검해보길 바란다.

이무형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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