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살아 보니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말도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냥 “역사는 흘러가고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만이 전부다. 사람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존재다. 돈과 명예, 권력을 추구한다. 그래서 2000년 전 사마천은 제일 잘하는 정치는 이런 사람들의 속성에 따라가는 것이고 도덕을 강조하거나 형벌로 겁주는 정치는 못난 정치라고 말했다.

사마천이 살던 때는 인권이나 복지 개념이 없던 시절임에도 사람의 욕망과 이기심을 존중해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 후의 역사를 보니 사마천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공산주의의 붕괴와 포퓰리즘 국가의 참상은 사람의 본성을 무시한 이념과 체제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간교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현실을 외면한 채 정의만을 외치고 국가가 개입해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허망한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욕망과 이익의 흐름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 임무다. 이 흐름에서 배제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만 ‘보충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마땅하다. 1980년대까지도 중국은 해마다 수백만명씩 굶어죽었다.

당시 실권자였던 등소평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초청했다. 해결책을 묻는 등소평에게 하이에크는 한마디로 “시장만 활성화 시키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집단농장 없애고 정부가 모두 거둔 후 똑같이 나누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경제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등소평은 하이에크의 말에 따랐고 오늘의 중국을 만들었다.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실패한 사회주의가 아직도 소멸하지 않는 이유는 ‘합리적 불합리’라는 논리라고 말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틀렸다는 게 드러났고 그래서 불합리하지만 그걸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논리다.

그 정책을 포기하면 매우 큰 감성적 비용을 치르게 되고 자기 진영 사람들에게 배반자, 역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 인한 해악은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사회주의적 사고에 젖은 측근들에게 둘러싸인 문 대통령에게 지금까지의 국정운영을 바꾸거나 포기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문 대통령이 늘 말하는 공정, 균형, 포용이란 아름다운 단어는 듣기에는 좋지만 분열, 갈등, 증오로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오늘날 국가의 존망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소프트파워의 복합 경쟁이다. 이 세 가지에 대해 지금 정권은 어떤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 전략을 수행할 능력이 되는지 국민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 혁명, 중국 혁명, 쿠바 혁명, 이란 이슬람 혁명, 베네수엘라 혁명 뒤의 국민의 삶은 어떠했나? 독재와 인권 탄압과 경제 파탄이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따랐다. 촛불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현 집권층이 만들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사상과 이념의 옳고 그름은 역사가 심판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충고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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