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관련 토론회에 참여 했었다.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은 지방자치에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강화하는 내용이 그 핵심이다. 토론회에 참여했던 대부분이 그 내용을 지지했다.

필자 역시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강조했다. 시민의 직접 참여도 중요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과 의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 역시 고민해야 한다. 대의 기구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할 수 있는 최대한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패널 토론이 끝나고 청중 토론 시간에 내 의견에 문제제기가 들어왔다. "당신 의견 불편하다." 왜 대의제 민주주의로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하려 하냐는 게 문제제기의 요지다. 뿐만 아니라 토론회 후에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의회를 강조하냐, 더 이상 의회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이런저런 의견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내용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이 짧은 지면에서 일일이 다 논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앞으로 발전적인 논의를 위해 내 생각을 명확히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겠다는 점이다.

나는 왜 대의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장 큰 매력은, 평범한 시민들이 각자 자신들의 소중한 삶을 살면서도 그 삶의 기반이 되는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일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헌신하는, 그 시간과 비용을 희생하지 않아도 꾸준히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가능한 것은, 다양한 시민들의 이익과 목소리를 조직하고 대표하는 복수의 좋은 정당, 좋은 정당을 이끌어가는 좋은 정치인, 그리고 다양한 자율적 결사체들의 활발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요구를 조직하고, 대표하는 자율적 결사체들이 존재한다. 정당 역시 시민들과 직접 호흡하면서 혹은 결사체들과 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과 제도를 개발하고 이를 의회라는 공적 논의 기구 안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하여 하나의 대안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잘 움직인다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여러 현안을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다.

문제는 이 메카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핵심은 ‘정치’의 역할인데, 정치가 보통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으니 정당끼리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정작 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들이 논의되고 있다. 필자는 직접 참여 제도를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의 대안일 수 있겠는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접 참여 제도에는 누가 참여할 수 있을까?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참여할 수 있을까? 폐지를 주우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어르신들은 참여가 가능할까? 취업 준비에 알바에 하루가 부족한 취준생은 어떨까? 입시 제도에 시달리는 우리 학생들은 언제 참여해서 자신들의 고충을 말할 수 있을까?

직접 참여하지 못하면 원치 않아도 스스로 배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모순, 여가를 즐길 수 있고 경제적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회 중상층 사람들이 중심일 수 밖에 없는 직접 참여제도의 딜레마는 여전히 숙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직접 참여를 주장하는 많은 분들은 정작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을 하지 않는 듯 하다.

정치와 시민 직접 참여제도는 서로 대체제가 아니다. 인간이 하는 무엇도 완벽한 것은 없다. 다양한 고민과 실천들 가운데서 적절한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포기하자고 주장할 게 아니라면 직접 참여를 모색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좋은 정치인과 정당을 만드는 문제 역시 고민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을 그저 불편하게만 느낀다면, 아무리 시민의 직접 참여를 강조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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