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서울·경기 등 수도권 땅값이 11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우려가 높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3기 신도시를 지정했음에도 집값의 근간이 되는 땅값마저 어쩌지 못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3기 신도시로 지정된 하남·과천·고양 등의 땅값 상승률이 심상치 않다는 데 주목한다. 투자 수요에 더해 막대한 토지 보상금,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등에 대한 기대감이 땅값 상승을 부채질했다는 풀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땅값은 1.86% 상승했다. 전년동기(2.05%)보다 0.19%p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전국 땅값 상승률이 주춤한 데는 지방 도시들의 경기 침체와 부동산 경기 하락이 자리 잡고 있다. 지가 하락률이 눈에 띄게 심각한 5곳은 울산 동구(-0.84%), 경남 창원 성산구(-0.79%), 경남 창원 의창구(-0.77%), 경남 거제시(-0.73%), 경남 창원 진해구(-0.71%) 등이다. 반면, 수도권 땅값 상승세는 불이 붙어서 타오르는 모양새다. 수도권 땅값 상승률은 지난해 2.14%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2.15% 올랐다. 금융위기를 맞기 직전인 2008년 3.47% 급등한 이후 최고 수치다. 서울은 2.28%, 경기도는 2.06% 올랐다. 3기 신도시 지정 이후 집값 침체기를 겪는 인천조차 1.91% 상승해 전국 평균치를 웃돌았다.

경기 지역 내 최고 상승률을 들여다보면 예외 없이 정부가 추진하는 개발이 계획된 곳이다. 3.73%로 최고 상승률을 보인 용인시 처인구는 용인테크노밸리 예정지다. 시가 나서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최근 SK하이닉스 반도체단지까지 유치하면서 투자 수요가 몰려 땅값이 크게 올랐다. 이어 하남시가 3.21% 올랐다. 3기 신도시로 교산지구가 지정된 가운데 지하철 3호선 연장이 발표된 터다. 과천시도 2.92% 치솟았다. 3기 신도시 계양테크노밸리가 자리한 인천 계양구의 상승률은 올 6월까지 2.58%로 인천 10개 구·군 가운데 유일하게 2%대 상승폭을 보였다. 창릉 신도시가 예정된 고양시 덕양구도 2.55% 상승하며 인접한 일산동구(1.88%)와 일산서구(1.75%)의 오름폭보다 앞섰다.

그러나 실제 토지 거래량 자체는 지난해보다 줄고, 외지인 거래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에 따르면 수도권 전체 토지 거래량은 올 상반기 58만8천303건으로 전년동기보다 22.2% 줄었다. 이 같은 수도권 토지 거래량 축소와 땅값 상승세는 수도권에 대해 투자 수요와 개발호재 기대감이 충만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거래 자체는 줄었지만 향후 땅값 상승 기대감에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가격만 오르는 것이다.

부동산업계는 수도권 땅값 상승세가 앞으로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연말부터 3기 신도시로 지정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과천,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지역에 30조 원에 달하는 토지 보상금이 풀리는 탓이다. 수십조 원이 한꺼번에 풀리는 건 2003년 2기 신도시 지정 이후 16년 만이다. 이에 정부는 주변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투기 차단에 나섰다. 현금 보상 방법을 대토리츠 등을 도입해 다변화함으로써 유동성을 분산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금리인하가 단행된 가운데 토지 보상금이 풀리게 되면 유동성이 갈 곳은 결국 땅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땅값 상승세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이른바 ‘불의 고리’ 재현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땅값 상승은 건축 재료비 상승을 불러오고 이는 분양가 상승효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다만, 토지 거래량 축소가 말해주듯 정부가 강력한 대출 규제와 부동산 규제를 시행하고 있기에 시중에 풀린 돈이 쉽게 부동산시장으로 흘러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실제 경기도와 인천의 집값만 볼 때 3기 신도시 발표로 인해 미분양 우려가 커지면서 크게 하락했다. ‘집값 안정화’를 위해 달려온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올 연말부터 수도권에 풀리는 토지 보상금 30조 원과 함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이금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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