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오케이?” 베트남의 하노이 노이바이(Noi Bai) 공항에 마중 나온 기사가 차에 오르자마자 건넨 말이다. 발음은 엉성했지만 ‘바캉스’라는 말은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려 하는데 딸아이가 만류했다. “아빠, ‘박항서’라고 말한 것 같은데...”

베트남, 초행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6, 70년대 서울변두리 풍경과 닮았고, 사람들의 표정도 정겨웠다. 도로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자전거가 무시로 뒤엉켰고, 인도에 닥지닥지 붙어 앉은 행상들의 추레함이 인상적이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가 신기하기만 했다. 살짝 괴로웠던 건 냄새였다. 도로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쓰레기의 악취와 그 위를 파고드는 고양이와 개, 그 옆에서 쪼그려 앉아 ’분짜‘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난의 표상처럼 보였다.

문득 베트남전쟁이 떠올랐다. 이리도 작고 나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덩치 큰 나라들, 그중에서도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서 승리를 거두고 통일을 이루었다니. 전쟁을 생각하다 보니, 아연 하노이 거리의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들의 저 너저분하고 초라한 모습 속에 숨어있는 단단하고도 알찬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아베의 경제보복과 그에 편승한 도발이 기승이다. 급기야 일본 각의는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에 맞서고 항의하는 건 우리로선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결전의 의지를 표방했다. 이쯤 국민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성난 민심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기업은 기업대로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신중론과 양비론을 펴는 이들이 있다. 일본의 저의를 잘 분석해서 전략적으로 대응해야지 감정싸움에 휩싸여선 안 된다는 신중론으로 시작해서,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문재인 정부는 뭘 하고 있었느냐고 따진다. 딴엔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흰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네들 의식의 기저에 깔린 식민사관과 사대의식의 악취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느낌이다.

내부 비판이 무조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는 대안의 제시이고, 둘째는 시기와 상황의 부합이다. 지금은 내부 비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전쟁이 난 마당에 참전은커녕 아군을 향해 총질을 하고 있는 꼴이다. 모 신문에선 불매운동은 해법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다. 물론 불매운동이 근원적인 해법일리 없다. 그러나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다. 다만 추진력이 있을 뿐이다. 우선 추진력을 창출해야 하고, 그럼 해결책은 뒤이어 따라온다.

이즈음 필요한 건 단결이다. 단결하되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래디칼(radical)하되 익스트림(extreme)하지 않게’를 외쳤던 재독동포 어수갑의 말이 새삼 귀하다.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이제 우리는 좀 더 차분하게 근원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라디칼(radikal)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뿌리인 본성(Natur der Sache)은 덮어둔 채 두루뭉술하게, 은근슬쩍, 대충대충, 이해타산과 정리정략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근원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반시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게 있습니다. 라디칼하되 결코 엑스트렘(extrem)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극단적인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어수갑의 ‘베를린에서 :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의 한 대목이다.

다시 베트남전을 생각해 본다. 서구열강을 몰아내고, 최강국 미국마저 줄행랑을 치게 했던 베트남의 힘은 무엇인가. 경제력이었나, 최신 무기로 무장한 군사력이었나? 아니다. 경제력도 군사력도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가 한데모여 거대한 힘을 만들었다. 미군의 가공할 화력에 맞선 베트남군의 무기는 고작해야 푼지 스틱(죽창 함정)과 뱀 구덩이, 대나무 채찍, 깡통 수류탄 등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무기는 따로 있었다. 총화된 통일 의지와 단결의 힘이었다.

불매운동이 일본의 경제침략을 막아낼 근원적인 해법일리 만무하다. 일본여행 안 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은 의지들이 모여 일본이라는 거대한 댐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게 곧 베트남에서 보고 느끼는 단결의 힘이다. 격렬하게 싸우되 극단으로 흐르지만 않으면 우리가 이긴다.

최준영/ 작가, 거리의 인문학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