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의 자족성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90년대 중반 무렵, 분당, 일산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파트 입주는 시작되었는데 학교의 개교, 쇼핑센터의 입점과 노선버스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초기 입주자의 불편이 매우 심각하였다. 시간이 흘러 계획인구 40만명이 된 2000년 무렵에도 분당신도시에는 교육, 쇼핑, 문화복지 시설 등에 대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신도시의 자족성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기 신도시건설이 시작되던 무렵, 1기신도시의 시행착오로부터 ‘도시자족시설용지’를 도입하는 교훈을 얻게 된다. 또 조기 자족성 확보를 위하여 부동산PF사업이라는 기법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모든 개발사업의 성공모델로 박수받는 판교테크노밸리는 판교신도시의 자족시설용지로 공급되었으며 대규모 신도시에는 예외없이 PF사업이 도입되게 된다.

2기신도시가 대규모로 건설되면서 자족신도시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다. 어느 정도의 일자리가 있으면 자족도시일까? 오래 전이지만 기디온 골라니(Gideon Golany)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자족도시란 경제활동인구대비 100%의 일자리가 있으면 자족적(self sufficient)이라고 규정한바 있다. 40만 규모의 분당신도시에 16만인의 경제활동인구가 있다고 하면 대개 16만개의 일자리가 있으면 자족적이다. 그런데 이동성이 향상되면서 교차통근이 빈번해지니 꼭 정설은 아니라고 해도 일자리가 많을수록 상권이나 주택시장이 살아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자리의 개수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자리인가이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판매유통, 음식숙박, 교육분야의 일자리는 인구수에 비례하는 일자리이다. 이외에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 회계 과학기술 컨벤션 금융 보험분야의 일자리들은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IT, 소프트웨어, 방송영상통신, 빅데이터관리 분야의 일자리들은 개수도 늘어나고 생산성도 증가하여, 이런 일자리가 집중하는 지역이 성장하고 주변 주택시장을 끌어올린다. 대표적인 곳이 판교이다. 대학캠퍼스보다 작은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지방의 국가산업단지 10개에 필적하는 80조원이라는 매출이 발생하였다. 그것도 매년 빠르게 성장 중이다.

3기신도시에는 자족시설용지가 대규모로 공급된다.

규모로 볼 때 2기신도시의 2~3배의 자족시설용지가 공급된다. 그런데 판교와 같은 성공모델을 다른데서 찾아보기 어렵다. 즉 판교옆에 제2판교, 그옆에 또 제3판교이다. 왜 그럴까 ?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제철 등 대한민국을 먹여살려온 제조업벨트는 해안가의 국가산업단지에 있다. 그런데 소위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신성장산업은 강남, 마곡, 상암, 성수 그리고 판교 등 대도시, 그것도 강남접근성이 좋은 경부축을 벗어나지 않는다. 전통적인 제조업벨트는 기업이 사람을 불러들이는 방식 (people to job) 이었다면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신성장산업은 소위 혁신인력들이 있는 곳에 기업이 모여드는 방식(job to people)으로 성장한다. 그러다 보니 대도시의 도심, 고속교통의 결절, 대학 및 연구소 접근성이 좋고 쾌적한 장소에 성장산업이 모인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보스턴과 뉴욕 등에 기술혁신기업과 벤처캐피탈이 집중하고 있다.

사람을 이동시키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주택이 부족하던 시절, 대규모의 쾌적한 주거단지와 광역교통망을 공급하면 20~30만인 규모의 신도시가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졌다. 1기 신도시와 동탄, 판교, 광교 등의 2기신도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3기신도시를 건설하려는 현재 시점은 주택공급의 목표보다도 일자리에 대한 요구가 더 큰 시대이다. 사람들을 이동하게 하는 힘이 주택보다도 일자리, 특히 성장산업의 일자리에 있다. 그런데 이 성장산업의 일자리란게 아무데로 움직이는게 아니고 IT 산업은 강남에서 판교로 영통, 동탄, 평택 등 경부축을 따라서 움직이는 등 한정된 장소를 따라 움직인다. 미디어산업은 여의도에서 상암, 일산을 따라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관련 전문직 종사자들의 움직임이 이들 입지에 큰 영향을 주는 듯 하다. 기업을 유치하는 일과 함께 창업과 기업성장을 지원하는 일, 이들 인력에게 저렴한 작업공간과 교류협력공간, 창업지원주택을 공급하는 일, 24시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도 함께 중요하다. 3기 신도시의 성공이란 이들 일자리를 얼마나, 공급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자리와 주거가 균형을 이루는 자하밸(job housing balance) 신도시를 기대한다.

김현수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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