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지구온난화’에서 ‘지구가열’로, 새로운 단어나 개념의 등장만큼 세상에 특별한 시기가 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 인류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원래 있었던 ‘기후변화’가, 인간이 만든 문명으로 인해 가속되고 증폭돼서 오랜 지구시스템의 균형을 깨고 인류를 포함한 지구생태계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의 정점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진화해서 사회의 정설이 된다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서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플러그 뽑기’, ‘전등 끄기’ 등 개인적 차원의 실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고, 사회제도와 전기요금체계 등 핵심적인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북극 빙하 절반이 사라지는 데 30년이 걸렸다. 남은 절반은 더 빨리 녹을 것이다. 녹는 속도도 더 가속될 것이다. 기후위기 상황을 알려주는 가장 큰 증거다. 석탄화력발전과 경유 승용차 등 화석연료 연소가 온실가스 배출과 미세먼지의 핵심원인이다. 현 추세처럼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대기 정체로 인해 고농도 미세먼지 지역과 일수가 증가하고 폭염이 일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한반도 평균온도 상승은 산업화 이후 세계평균온도의 두 배에 달한다.

내년 새롭게 출범하는 파리기후체제는 석탄발전 제로와 내연기관차량 금지를 약속했다. 세계적으로 위기에 따른 대응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독일 오는 2022년 핵발전제로, 영국 2025년 석탄발전 제로, 독일과 인도는 2030년 화석연료 자동차 생산금지를 선언했다. 덴마크는 2030년까지 전기, 열, 수송에너지의 5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2030년 재생에너지 20% 달성이 목표이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 3천6백만t으로 줄여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추정치가 7억2천만t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로 가면 2030년 8억5천만 t을 상회할 것이다(환경부 온실가스 로드맵). 우리는 전력소비량, 자동차 등록 대수, 석탄발전, 1차 에너지소비량 등 주요 지표에서 현재의 절반 수준인 2000년 온실가스 배출량 수준(5억1천만t)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현실 가능해 보이는가? 정말 어려운 과제이다. 당장 현재의 생활양식을 전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주요 배출원은 87%가 에너지 소비이다. 그중 전기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우리나라 총 온실가스 배출량 40%가 전기생산에서 나온다(2108 환경부 국가 온실가스 통계, 에너지경제연구원). 지난 2017년 현재 전력소비량은 2000년에 비해 2배가량 증가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주요 선진국들이 같은 기간 줄어들거나 정체 상태였던 것에 반해 우리나라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소비량 증가 문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캠페인만으로 한계가 있다. 전기요금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 수준은 OECD 국가 중 매우 저렴한 편에 속한다. 구매력평가지수를 적용해도 마찬가지다(31개 국가 중 밑에서 4~5위, 에너지정의행동). 소득과 전기요금 추이도 소득 증가에 대비해 전기요금은 제자리 걸음이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최근 오르는 추세이지만 일본, 독일, 영국보다 저렴하고 프랑스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 나라들에 비해 산업분야 전기사용량 비중이 매우 높다(가정13%, 산업56%). 문제는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이 유연탄이나 유가보다 값이 더 싸다는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원료인 유연탄보다 최종생산품인 전기가 저렴한 역전현상이 발생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제조업 등 산업체들이 에너지원에서 전기비중을 급히 늘리고 있다(2004년 33%→2018년 49%). 생수로 빨래하는 격으로, ‘1차에너지원→전기→열에너지’로 에너지변환을 거치면서 변환손실(100%→74.7%)이 증가해 에너지 누수가 심화되고 있다. 덩달아 생활용품도 전력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요즘 같은 여름철 상가들이 문을 열어놓고 냉방영업을 하는 것도 값싼 전기요금 탓이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감수하면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냉난방 장치로 각자 버틸 것인가?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고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해 사회 전체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기후재난을 막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당장 사회적 논의에 나서자.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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