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은 해발 300m에 있는 분지지형이다. 정읍 내장사에서 보면 남쪽으로 해발 700m가 넘는 호남정맥 본줄기가 이어진다. 밑에서 보면 산위에 누가 살까 싶다. 그러나 굽이굽이 난 추령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면이 자리할 만큼의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산세도 아래에서 보는 거와는 다르다. 내장산 쪽에서 보면 험준한데 올라가면 순하고 평탄하다.

복흥면 동쪽은 순창 강천사, 서쪽은 장성 백양사, 남쪽은 담양, 북쪽은 정읍 내장사가 위치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복흥을 가려면 가파른 길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그만큼 복흥면이 높은 곳이다. 이러한 지형이 형성된 것은 호남정맥이 한 바퀴를 돌며 사방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정맥이 고당산에서 추령(갈재)로 이어지면서 복흥이 시작한다. 내장산 장군봉·신선봉·까치봉으로 서진하더니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백암산·대가산을 세운다. 그리고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추월산을 만든 다음,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신산·치재산을 만든다. 그리고는 동쪽에 회문산을 세우고 남진하여 강천산과 설산을 거쳐 광주 무등산으로 이어져져 나간다.

대부분 분지 지형은 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들이 양팔을 벌려 감싸듯 형성된 곳들이다. 복흥면처럼 큰 정맥이 휘돌아 형성한 곳은 극히 드물다. 풍수적으로 본다면 거대한 용이 꽈리를 튼 그 안쪽 공간에 위치한 것이다. 그만큼 큰 기운이 서려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복흥면은 옛날부터 풍수 좋기로 유명하다.

신라 말 도선국사는 이곳을 지나면서 24혈이 있다고 유산록에 적었다. “새재(조령)를 넘어 가니 옥천 복흥 여기로다. 전후 24혈이 하나하나 모두 기묘하도다.”라 하면서 각각의 혈을 소개하였다. 이 때문에 옛날부터 많은 지관들이 혈을 찾고자 복흥을 찾았다. 음택이든 양택이든 혈을 찾아 쓴 집안은 크게 번창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전해진다.

예를 들어 금방동의 황앵탁목혈을 쓰고 노사 기정진(1798~1879)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녹문 임성주, 한주 이진상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화개산의 자봉포란형을 쓰고 인촌 김성수가 배출되었다고 하고, 백방산 아래 천마입구혈을 쓰고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가 태어났다고 전한다. 어은리의 금반형에서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홍영기가 태어났고, 선녀가 피리 부는 형상인 선녀취적형에서 서편제를 창시한 박유전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복흥면처럼 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는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로 불린다. 삼재란 전쟁·흉년·전염병 세 가지 재앙이다. 전쟁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산 높은 곳이기 때문에 적의 눈에 잘 띠지 않아서다. 설사 적이 침입한다하더라도 방어하기에 유리하다. 실제로 6.25때 옆면인 쌍치면과 담양군 용면 가마골은 빨치산 본거지로 토벌대와 전투가 치열했다. 그 바람에 민간인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복흥면은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흉년이 없는 것은 넓은 분지에 평야가 발달되어 있고 물이 풍부해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태풍 등 자연재해가 없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그래서 1년 농사 지어 3년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일교차가 커서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의 당도가 높다. 복흥면은 논농사 외에 특산물로 오디, 복분자, 완두콩, 오미자, 블루베리, 두릅 등이 있고 고로쇠 약수와 전통한과가 유명하다.

전염병이 없는 것은 외부와 접근하기 어렵고 물과 공기가 깨끗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외부와 접촉이 없으니 전염병이 전파되지 않았다. 설사 들어온다 하더라도 청정지역이므로 저절로 소멸되고 말았다. 물 역시 섬진강의 최상단에 있는 분지이므로 외부에서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관리만 잘하면 물이 오염되지 않는다. 복흥면의 경쟁력은 맑은 공기와 물, 산 등 자연이다. 개발보다는 자연을 보존하여 쉼과 치유 지역으로 활용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이 될 것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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