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최근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파문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듯이 대한민국에서의 교육은 입시경쟁의 욕망 앞에 날로 무력해지고 있다.

특히 ‘음미체’로 불리는 예체능 교육은 열악한 인프라와 예산, 무엇보다도 ‘국영수’라는 입시 주요 과목에 밀려서 점점 그 형체가 미미해지고 있다. 수학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아카데미를 열었을 때 음악은 주요 네 과목 중의 하나였다. 19세기 세계를 지배하던 대영제국의 귀족 사립학교의 커리큘럼에서 협동심과 리더쉽의 함양은 축구 과목에서 이루어졌다.

학교 교정 안에서의 예술 교육의 실종은 비단 우리 나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중산층 이하 저소득 계층의 아이들은 평생 제대로된 예술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의 최강국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반기를 들고 나온 인물은 미국의 전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오바마는 자신이 상원의원 시절에도 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으며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도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내내 강조했다. 2011년에 발간된 ‘예술교육에의 재투자 : 창의적 학교들을 통한 미국의 미래 얻기’는 그의 예술교육 정책의 방향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현장 예술가, 문화계 리더, 예술교육 담당자 등 90여명으로 문화예술 전문가로 이루어진 오바마 예술정책 위원회는 미국의 창의성은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영화관 등의 예술 작품을 통해 완성되며 이를 위해 예술교육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의 시대적 환경에서 학생들이 과학과 수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큼 창의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리노이주의 저소득층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시범적으로 행해진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상원의원 오바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가동한 고등학교가 그렇지 않은 고등학교보다 훨씬 많은 명문대 진학률을 보이고 있음을 주목했다.

그의 예술정책 위원회가 생각하는 21세기의 예술교육의 목적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드높이는 더 많은 예술가의 양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도모해가는 보다 많은 문화시민들을 길러내는 데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예술가들과 교육기관 사이의 협력과 열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정책입안자들(policymakers)과 공공적 민간(civic), 그리고 기업(business)의 삼자협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학교에서 사망한 예술교육을 이제는 공공 영역이 담당해야 할 때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와 공공 및 시민사회 영역이 본격적으로 협업을 펼쳐야한다. 2010년대 이후 여러 모델들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통해 여러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가 의미심장한 결과를 낳는다면 이는 바로 전국적인 모델로 확산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가 필요할 때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음악평론가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