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언론을 보면 경제는 살아나고 있는 것 같은데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는 사안은 세종 시 추진에 대한 논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신종플루, 그리고 노사 문제와 전방 철책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경제에만 온 신경을 쓴 탓에 행여 안보에 구멍이 생긴 것은 아닌지, 국민건강 정책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지식인들까지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인양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선거 당시 원안 추진을 약속한 정치 지도자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에는 가차 없이 날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그 누구도 개인의 의견에 대해 자기 잣대로 판단하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아무 말도 못한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의견을 낸 개인에게 공격성 비판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論語의 위정편에 공자 말씀으로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하는 것을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모든 별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 共之).” 즉, 공(共)은 공(拱)으로 통한다. 정사라고 하는 것은 바른 것이니 사람의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덕이라 하는 것은 얻는 것이니 도(道)를 행해서 마음에 얻는 것이다. 북극성은 하늘의 중추다. 그곳에 거한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공(拱)은 향하는 것이니 모든 별이 사면으로 둘러싸여서 향하는 것이다. 정사를 덕으로 하면 움직이지 아니해도 교화되며, 말하지 않아도 믿으며, 하지 않아도 이루는 것이다.
또한 “道之以德(도지이덕) 齊之以禮(제지이례)면 有恥且格(유치저격)”이니라. 즉, “이를 인도하기를 德으로서 하고 이를 정제하기를 禮로서 하면 백성이 부끄러움을 알고 또 착하게 될 것이다.” 몸소 행하여 통솔하면 백성이 진실로 보고 감동한다 했고, 얕고, 두텁고, 얇은 것이 균일하지 않는 것은 예(禮)로서 균일하게 하면 백성이 착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착한 것에 이른다고 했다. 정사는 다스리는 도구이며, 형벌은 다스리는 것을 돕는 법이며, 덕(德)과 예(禮)는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했다.
이 말에 귀 기울이는 정치지도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약속이 우선이냐, 국익이 우선이냐 하는 가운데서도 투자한 국민의 세금 또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 상황에서 국민은 어떻게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을 믿고 따를 수 있을 것인지? 삶의 터전을 국가 계획에 바치고 가족들과 흩어지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곳 주민들은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또한 지도자의 의견은 어떠한 경우라도 존중되어야 하고 흠집내기식의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원만한 소통의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이기 때문이고 정부도 그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국민과의 약속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 약속을 충분한 설명이나 대안 없이 깨버린다면 앞으로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와 원만한 시행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인 德과 禮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직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에 대한 신뢰와 국가의 미래보다는 포퓰리즘 결과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박종선/한국전례연구원 예절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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