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는 2017년 광화문 촛불 이전의 진영대결 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상당수 중도보수층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또 다시 진영논리만이 존재하는 정치상황으로 전환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많은 원인이 있겠으나, 조국 장관과 관련되어서는 소위 386으로 불리는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과 실망감이 교차하면서 나타난 국민감정의 변화가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법무부장관 임명과정에서 보수정치세력의 도덕적 흠결에 대한 과거 지적들이 자가당착이 되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도덕성, 언행일치를 지적하는데 대통령과 조국장관은 적법성으로 대응하면서 사태를 키운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국장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386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었고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대한 인식변화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386은 흡사 과거 우리나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시골집의 유학생 장남인 것 같다. 집안을 일으키라고 모든 노력을 동원하고 부모형제의 희생으로 유학가서 성공한 후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공한 듯이 고향을 부끄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현재 한국정치의 386에게서 오버랩 된다.

1980년 전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독재정권 아래에 살았던 산업화 세대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정경유착으로 경제적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만은 잘 키워보겠다고 좋은 학교에 과외에 유학에 공을 들였다. 그 뒷바라지로 대학생이 된 386들은 87년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다.

1987년 전후, 당시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반독재투쟁과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젊은 정치인들과 재야의 선배들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저항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실이 87년의 역사적 사건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현실은 기나긴 민주화의 역사 끝자락에 등장해서 찰나의 불꽃을 태웠던 386들이 한국민주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386세대의 반독재투쟁의 공은 존경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형성하고 세력화한 이후 보여준 행태는 너무나 심각하다. 386을 생각하면 진보, 자기혁신, 도덕성, 희생정신 등의 떠오르는 핵심 키워드들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그들에게서는 혁신도, 포용도, 발전에 대한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인공을 자처하며 미래사회를 이끌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는 386세대의 사고방식으로는 적응할 수 없는, 그들의 기득권을 내놓아야 하는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난 30여 년 간 우리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노정되고 있는 이유는 독재를 극복했으나 민주주의를 생활화하지 못한 데에 있다. 독재체제 종식 이후 계속되어야 할 일상의 민주화를 소홀히 해왔던 것이다. 이것이 386의 한계이며 다음 세대들에게 주문해야 할 과제라 할 것이다.

386세대는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전세대와 이후 세대 모두를 배제하고 자신들만이 사회를 이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학창시절 반독재투쟁을 하던 그들이 30대 때 제도권으로 유입되고 40대 때 세력화했으며 이제 50대가 되어 있는데, 현재의 40대들은 386의 40대와 비교할 때 세력화가 되어 있는지, 30대들이 제도권에 유입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의 30대, 40대가 자기자리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을 그 세대의 잘못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정치권은 물론이고 각 분야에 대한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본다면 30대, 40대의 잘못만으로 볼 수는 없겠다. 예를 들어 사회의 고령화를 명분삼아 정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을 보면서 청년세대들의 취업절벽을 더 높고 크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386세대들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10년이면 그들의 공식적인 사회적 역할은 마감될 것인데, 지금부터는 기득권을 서서히 내려놓고 다음을 이어갈 건강한 세대를 성장시키고 준비해야 한다. 사회의 지속성은 물론이고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세대 간 연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류홍채 정치학박사 /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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