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리도 미쳐 돌아가는데 인문학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다 부질없는 일 같아요. 인문정신과 인문소양 외치던 사람들의 언변을 좀 들어보세요. 그들이 과연 인문학을 공부했거나 들먹였던 사람이 맞는지 눈과 귀가 의심스러울 뿐이에요."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찾은 지인의 장탄식이다. 뭐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변명이라도 늘어놓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는 순간 변명해봐야 공연히 헛힘만 쓰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의 21세기는 5백 년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당시의 서구사회와 닮았다.

당시의 서구사회의 모습을 일별해 보자.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단이 절정으로 치닫자 격변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흐름은 크게 두 가지 갈래였다. 하나는 그리스도교 인문주의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이었다. 인문주의는 그리스도교의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일단의 인문주의자들은 지나치게 논리적인 중세 가톨릭교회의 스콜라 철학에 가려 있던 그리스도교의 철학을 찾아냈다. 그것은 의식과 도그마(dogma)의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와 도덕의 그리스도교였다. 에라스뮈스가 주도한 인문주의 개혁노선이었다.

종교개혁은 그러한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인문주의의 기대를 저버리고 새로운 도그마가 되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에 저항하면서 양심과 자유를 외쳤으나, 근본적으로 관용론자가 아니었다. 그가 만든 프로테스탄트 교회 역시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불관용으로 치달았다. 서구 관용의 역사는 종교개혁과 인문주의와 함께 시작되지만, 두 힘의 성격과 방향은 달랐다. 종교개혁은 불관용적이었던 반면, 인문주의는 관용적이었다. 처음에는 종교개혁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인문주의가 승리를 거둔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사람들의 눈과 귀를 압도하는 것은 보다 선명한 주장과 강력한 구호다. 멀리 16세기까지 갈 것도 없이 독일의 나치와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권에서 그 같은 현상을 읽을 수 있다. 권력이 제도를 뒤로하고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강한 것은 언뜻 승리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는 유연한 것의 몫이다. 날선 구호는 대중을 환호하게 하지만 한편으론 대중의 의식을 좀먹는다.

관용은 종교개혁의 여파로 빚어진 종교전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문주의에 의해 꽃을 피웠다. 에라스뮈스의 후예들, 일테면 프랑스 모럴리스트의 전통을 세운 몽테뉴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신-구교 사이의 화해를 정초한 낭트칙령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에라스뮈스의 인문주의와 프랑스 모럴리스트의 전통은 이후 스피노자, 로크, 밸,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로 이어지며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근대 기획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다. 이응종의 ‘관용의 역사’와 그가 번역한 벤자민 카플란의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의 논의를 차용해 봤다.

‘조국 사태’에서 비롯됐던 정치권의 갈등과 반목은 급기야 국민의 마음까지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 혹자는 대의민주주의에 실망한 대중이 광장으로 나와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다른 이는 중우정치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내 보기엔 직접민주주의니 중우정치니 하는 말은 둘 다 사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주장은 양분됐지만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본질은 낡은 것을 교체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음이다.

갈등(葛藤)은 전요식물인 칡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먼저 치고나가려다 부딪치는 데서 유래했다. 낡은 것을 대하는 시각과 인식의 차이 역시 갈등을 낳는다. 한쪽에선 집권세력의 낡은 도덕적 관념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선 검찰개혁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그 같은 주장을 내놓는 방식의 폭력성이다. 양쪽 공히 비타협적이고 불관용적이었다. 종교개혁이 기존 교회의 도그마를 그대로 계승했듯이 검찰개혁을 부르대는 쪽 역시 현실의 도그마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반대쪽 역시 자신들의 도덕적 결함은 망각한 채 현 정권의 도덕적 도그마를 들추기에 혈안이다.

관용은 저절로 획득된 개념이 아니다. 인문주의의 기나긴 노력 끝에 지속적으로 변화했고 또 인권의 문제로 발전했다. 16세기에서 출발해 계몽과 근대의 시대를 넘어 현대 서구사상의 전통으로 굳어진 관용은 이제 더 이상 철학적 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벤자민 카플란의 말마따나 이제는 관용의 실천이 필요한 때다.

최준영 작가, 책고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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