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 창평면은 슬로시티(slow city)로 유명하다. 슬로우시티란 느림의 미학이다.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 하자는 국제운동이다. 처음은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대항한 슬로푸드(slow food)운동에서 시작했다. 1986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브라 마을은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맥도널드 햄버거의 이탈리아 진출에 반발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식재료와 요리법으로 질 좋은 전통음식을 먹자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이 슬로시티로 발전한 것은 1999년 이탈리아 작은 도시 그레베(Greve)의 시장이 치따슬로(cittaslow), 즉 느리게 살자는 운동을 출범시켰다. 이것이 유럽을 거쳐 세계로 확산되어 현재 30개국 252개 도시로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도 15개의 도시가 국제슬로시티에 가입되어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2007년 12월 전남의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이 슬로시티 국제연맹의 엄격한 실사를 거쳐 지정되었다.

이후 하동 악양면, 예산 대흥면, 남양주 조안면, 전주 한옥마을, 상주 함창읍·이안면·공검면, 청송 부동면·파천면, 영월 김삿갓면, 제천 수산면, 태안 소원면, 영양 석보면, 김해 봉하마을, 서천 한산면 등이 가입하였다. 슬로시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7개 분야에서 72개 항목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인구가 5만 명 이하이고, 그 지역의 전통과 생태가 보전되었는가, 전통 먹거리가 있는가, 지역주민에 의한 다양한 지역공동체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가, 방문객을 환대하려는 주민의 마인드가 있는가 등이다.

창평은 옛 고택과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고, 임금님의 진상품인 창평쌀엿과 한과, 순대와 돼지고기를 가득 넣은 창평국밥 등 전통 먹거리가 풍부하다. 전통시장인 창평장은 5일장으로 5일, 10일에 서는데, 장 구경을 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다. 드넓은 창평 들녘의 풍부한 생산성 덕분에 인심 좋기로는 전국 최고다.

옛날에 창평은 담양 버금가는 큰 고을이었다. 창평 사람들은 유독 기질이 강하고,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의병이 일어났고,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이 이곳 태생이고, 송강 정철은 아버지가 유배에서 풀려나자 외가인 이곳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16살에 들어와 27살에 과거 급제하여 벼슬에 나갈 때까지 11년 동안 살며, 김인후·기대승·임억령·송순 등 기라성 같은 스승을 만나 학문을 익혔다.

삼지내 마을은 장흥고씨들이 50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의병장인 제봉 고경명의 후손들인 이들은 일제 자본에 맞서 창평상회를 만들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춘강 고정주는 고종 때 동생과 함께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에 올랐으나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애국계몽운동과 신교육운동에 헌신하였다. 1906년 집안의 정자였던 상월당에 사립학당인 창평영학숙을 세웠고, 이것이 커져 창평의숙이 되었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로는 인촌 김성수, 가인 김병로, 고하 송진우를 비롯하여 이한기 국무총리, 고재청 국회부의장, 고재필 보사부장관 등 부지기수다.

이곳의 산세는 호남정맥이 담양에서 광주 무등산으로 가는 중간인 수양산(593.8m)에서 비롯된다. 서쪽으로 국수봉(558.6m)을 거쳐 월봉산(453.5m)과 주산(223.9m)을 세웠다. 삼지내 마을은 주산 아래에 있다. 월봉산에서 발원한 월봉천, 운암천, 유천 세 갈래의 하천 물이 마을 앞으로 모인다. 삼지내 마을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물은 산맥을 멈추게 하여 지기를 모으게 한다.

좋은 터는 두 물줄기 사이에 있는데, 이곳은 세 물줄기 사이에 있으니 더 좋은 곳이라 하겠다. 이 물줄기들은 창평 들녘을 적시고 영산강으로 흘러간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 했는데, 창평이 부자 고을인 이유일 것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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