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갔던 남편이 갑자기 일찍 돌아온다고 하여 저녁 짓기를 서두르다가 커다란 냄비 뚜껑에 손을 데었다. 오랜만에 드라마 재방송을 재밌게 보고 있던 터라 주의가 산만했던 것이 문제였다. 요즘 젊은 남자 주인공들은 여자들 못지않게 어찌나 아름다운지. 아무리 오십대 아줌마라도 눈길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티비와 가스불 앞을 오가길 십 수번, 드디어 화상을 입었다.

아름다운 이성이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이리라.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성적으로 자극적인 사진이나 영상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남성들의 취미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십대 아들이 음란물 중독이 되었던 때도 나쁜 습관이라고는 생각을 하였으나, 범죄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아동음란물이다.

최근 미국 법무부는 다크웹에서 아동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모씨를 강제송환해달라고 우리나라에 요청하였다. 그는 국제공조를 통해 적발될 아동음란물 사용자 310명 중 한 명이었을 뿐 아니라 이를 유통하여 비트코인 4억여 원을 챙긴 혐의다. 그가 챙긴 부당이득의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미국의 사법당국이 손씨에게 적용한 죄명은 더욱 놀랍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묘사의 생산, 아동 음란물 게재의 공모와 실행, 아동 음란물 배포의 공모와 실행 등 모두 9개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적발되어 1년 반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손씨에게 주어지게 될 미국의 형량은 적어도 20년 이상 종신형에 가까운 것이란 점이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손씨를 이렇게 강력하게 처벌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그에게 내려진 죄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묘사의 생산’이란 범죄인데, 이것이 규율하고자 하는 취지는 바로 미성년자는 성적으로 대상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전제이다. 즉 아동음란물은 음란물 규제의 연장선상에서 처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을 성적인 대상물화 하는 중대한 범법행위로서 처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전제는 아동을 성매매하거나 비면식 아동과 채팅앱에서 음란한 대화를 하는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을 거래하는 모든 것이 엄중하게 처벌된다. 미국 의제강간 연령인 만 16세 미만 아동들을 대상으로 음란행위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하는 경우 엄벌에 처해진다. 한국에서 좀 심한 음란물의 규제 정도로만 여겨졌던 손씨의 혐의는 미국에 송환될 시 아동을 사고 판 반인륜범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름방학 내내 여가부의 랜덤채팅앱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며 지냈다. 수없이 많은 남자들이 13세 가출소녀로 위장한 우리 연구진의 성을 사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애하였다. 그들은 대낮 시간대부터 돈으로 우리를 유인하고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기도 하였다. 채팅업체는 역겨운 대화를 참고 성구매자들과의 대화에 응한 시간만큼 우리에게 온라인 쿠폰을 제공하였다. 커피쿠폰이나 케익쿠폰이 만일 진짜 가출소녀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라면 이는 채팅업체 역시 채팅을 통해 아동성매매에 나서려는 남자들과 진배없이 아이들을 사고파는 파렴치범인 것이다. 정말 큰일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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