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흔적을 찾아서] 동아시아 해양-대륙세력 격전지… 한반도 '분단 법칙' 벗어던지기
[그날의 흔적을 찾아서] 동아시아 해양-대륙세력 격전지… 한반도 '분단 법칙' 벗어던지기
  • 강진갑
  • 기사입력 2019.12.23 19:56
  • 최종수정 2019.12.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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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분단의 상징이 된 판문점. 냉전시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분단의 상징이 된 판문점. 냉전시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 글은 2019년 12월 19일자 중부일보에 게재된 "동아시아 해양-대륙세력 격전지… 한반도에는 ’분단 법칙‘ 있었다/ 한반도에는 분단의 법칙이 있었다(上)"에 이어지는 글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열강의 한반도 분할 획책

1894년 청일전쟁 결과 청나라가 패배하면서 2000년 이상 지속된 동아시아의 ‘중국 중심 천하체제’가 붕괴하고, ‘일본 중심의 제국 체제’가 등장하였다. 20세기 말 일본은 한반도를 거쳐 중국 대륙으로의 침략을 꾀하였다. 당연히 일본과 청나라는 충돌하였고, 그 무대는 한반도였다. 1894년 청일전쟁 패전으로 청나라 세력이 붕괴한 후에는 동아시아 대륙세력의 중심은 러시아로 교체되었다. 일본은 새로운 대륙 세력인 러시아를 1904년 러일전쟁에서 패퇴시키고 동아시아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중국 대륙을 침략하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영국까지 끼어들어 자국에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기 위해 한반도의 분할과 분단을 상대 국가에 제안하였다.
 

1894년 영국의 한반도 분할점령안

1894년 8월 1일 청일전쟁이 개전되기 직전인 1894년 7월 19일 영국 외상 킴벌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일본과 청국에 한양을 경계로 하는 한반도 분할안을 제안하였다. 분할안은 한양을 경계로 남쪽은 일본, 북쪽은 청나라가 점령하는 ‘한국에 대한 청·일군의 공동점령안’이었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와 프랑스 동맹의 아시아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청나라와 일본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영국이 중심이 되어 청나라와 일본과 동맹을 구상하였고, 이 구상은 한양을 경계로 남쪽은 일본, 북쪽은 청나라가 점령하는 ‘한국에 대한 일·청군의 공동점령안’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리한 정세에 있던 일본이 거절하면서 이 제안은 무산되었다. 일본은 장차 조선 전부를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1896년 일본 한반도 분할 제안

1895년 4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였으나 같은 해 4월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이 이루어지고, 1896년 2월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한반도 내에서 일본의 위상은 급격히 위축되고 러시아가 조선에서 그 힘을 키워 나갔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1896년 5월 일본의 군벌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러시아 외상 로바노프에게 39도선 분할을 제안하였다. 이 안은 39도선을 경계로 그 이북은 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고 남쪽은 일본 군대가 주둔하여 양쪽의 군사적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안은 한반도의 분단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에서의 정치, 경제, 군사적 이익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분할안으로 조선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는 안이다.

이 안에 대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러시아가 소극적으로 대응하였으나, 긴 논의를 거쳐 일본과 러시아는 ‘고무라 웨베르간에 1896년 5월 14일 경성에서 조인된 조선 문제에 관한 일·로 각서’(약칭 경성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이 안은 비상시 열강에 의한 한반도 분할이 합의된 최초의 문서이다.


1903년 러시아의 분할 제안

이후 한반도의 정세가 크게 변하였다. 1898년 러시아의 조선에서의 우위가 흔들기기 시작하였고, 1902년 영일동맹이 체결되면서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 관계가 역전되어, 일본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 같은 불리해진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가 움직였다. 1903년 10월 13일 러시아 주일공사 로젠이 일본에 한반도 39도선 이북 지역을 중립지대로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리한 정세를 점하고 있던 일본이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당시 당사자인 대한제국은 이러한 흥정이 비밀리에 이루어졌기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이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1910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 질서인 제국 체제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사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사는 크게 4시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중국 중심의 천하 체제’이다. 동아시아 문명이 형성된 후 동아시아는 유교와 한자 등 중국 중심 문화권이었다. 2기는 일본 중심의 ‘제국 체제’이다. 1894년 청일전쟁 결과 청나라가 패배함에 따라 동아시아는 일본 중심의 ‘제국 체제’로 이행된다. 이 시기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중국을 침략하며 동남아시아를 점령하며 미국까지 공격한다. 3기는 ‘분단의 시대, 냉전의 시대’이다. 1945년 일본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제국의 시대’는 종식되고, ‘분단의 시대, 냉전의 시대’가 시작된다. 중국과 대만이 분단되고 한국이 남북한으로 분단된다. 크게는 동아시아 대륙의 사회주의 세력인 중국, 쏘련, 북한이 대륙 세력이 되고, 자본주의 세력인 한국과 미국, 일본은 해양세력이 되어 대륙세력과 대립한다. 물론 대립의 기조는 이념 대립이다. 4기는 1990년대 중국이 개혁 개방정책에 의해 자본 체제를 도입하고 경제적으로 급성장하여 21세기에는 미국과 더불어 G2 국가로 성장한다. 소련은 분할되고 러시아는 이전과 달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겼으나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과 중국의 성장이다. 중국이 G2국가로 성장하자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의 성장은 한국이 일본에 새로운 한일 관계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의 법칙

한반도 분단의 역사는 1945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를 관통하는 한반도 분단의 법칙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체제 내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중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면 동아시아 주도권 장악을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전쟁의 주 무대는 한반도가 되었다. ‘중국 중심의 천하체제’에 도전한 해양세력은 일본이다. 신흥해양 강국인 일본이 195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 이후 냉전체제가 구축되면서 자본주의 진영인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해양세력으로 등장하고 사회주의 진영인 중국과 소련이 대륙세력이 되어 양 진영은 각축전을 벌인다. 6·25전쟁은 동아시아 체제 내에서 새롭게 흥기하는 대륙세력 사회주의 진영이 남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해양세력인 자본주의 진영의 미국이 사회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6·25전쟁은 내전이면서 동아시아의 국제전으로 확산되었다.

동아시아 체제 내에서 힘의 변동이 생기면 전쟁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둘째 동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면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을 전후하여 각 세력들은 어김없이 한반도 분할 내지 분단을 시도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고 가고자 39도선과 한강 선을 경계로 하는 한반도의 분단안을 명나라와 조선에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은 청나라가 거절하고 조선 정부가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무산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는 열강에 의해 한반도 분할이 시도되었다. 1894년에는 영국이 그들의 이익 확보를 위해 한반도 분할을 청나라와 일본에 제안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 패배로 청나라가 몰락한 후 동아시아의 대륙 세력으로 성장한 러시아와 일본이 대립하였다. 이 때 불리한 정세에 처한 국가가 상대 국가에 한반도 분할안을 제안하였다. 1896년에는 일본이, 1903년에는 러시아의 제안이 그것이다. 이 제안은 유리한 정세의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해서 무산되거나 또는 소극적인 내용으로 축소되어 양국 간에 협정을 체결하였다.

1945년 38선 획정은 새롭게 동아시아의 해양세력으로 참여한 미국이 대륙세력인 소련의 한반도에서의 세력 팽창을 막기 위해 설정한 분단선이다. 미국의 38선안을 소련이 받아들이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1953년 6·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다. 대륙세력인 중국과 북한, 해양세력인 미국이 이 협정에 서명하였다. 3년간 지속된 6·25전쟁으로 많은 인명이 손실되었고, 전쟁의 피로감을 느낀 양대 진영이 전쟁을 끝내기위해 휴전협정을 체결하였고, DMZ가 만들어졌다. DMZ는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켰다.

셋째, 한반도에서 분할 또는 분단이 시도되거나 분단되었을 때 한국은 국력이 약해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한반도의 운명을 한반도 주민이 선택하기 못한 것이다. 1945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분단되었다



한반도 분단의 법칙 벗어던지기

한반도 분단은 우리의 숙명인가? 한반도의 국력이 약할 때는 분단이 숙명이었다. 외세가 끝임 없이 한반도의 분단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이전과 다르게 강력한 국력을 지니고 있다. 30-50클럽에 가입하였다. 30-50클럽은 인구가 5천만명 이상이면서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나라를 지칭한다. 2018년 말 현재 ‘30·50클럽’에 가입한 국가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 한국 등 총 7개국이다. 이 중 식민지를 거친 나라 중 30-50클럽 가입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역사 문제만 불거지만 한국과 일본은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그 근본 원인은 일본의 식민지시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부족이다.

현재 한일간의 경제력을 비교해보면 양국간의 경제 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2019년 명목상 국내총생산 순위가 세계에서 10위이고, 교역액은 세계에서 9위이다. 인구를 살펴보면 2018년 일본 인구는 1억 2천718만 명이고, 2019년 한국 인구는 5,171만 명으로 일본이 2.6배 많다. 국내총생산은 2018년 일본이 48,919억 달러이고 한국은 17,208.9억 달러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2.8배 많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18년 한국은 33,346달러이고, 일본은 39,605달러로 일본이 한국보다 1.26배 많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경제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일본인구가 한국인구보다 2.6배 많은데, 국내총생산은 2.8배 차이가 나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1.26배 차이가 난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이 인구수만큼 차이가 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인들이 K-POP, 영화 등 한국의 문화에 열광을 한다. 그들이 단순히 한국 음악이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열광하는 것일까. 한국의 경제성장,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그 밑에 깔려있다.

중국의 동아시아 전문가인 쑨거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피해자이자 약자"로 간주되지만, "동아시아에서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치적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21세기 들어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고 그 급변의 두 축은 중국과 한국의 성장이다. 중국의 성장은 미국으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게 하고 한국의 성장은 일본으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 한국은 동아시아의 약자가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새롭고도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이다.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할 때 한반도는 분단과 분할의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주변 국가 누구도 무시못할 정도의 국력을 지니고 있기에, 동아시아 정세의 급변은 한반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은동아시아에서 더 이상 약자 코스프레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정세를 주도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이전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년이 며칠 있으면 지나간다. 20세기 한국은 식민지, 냉전과 분단의 두가지 상처를 지니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한반도의 남북세력이 주도하여 타개하여야 하며 이를 실현할 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 분단 상황은 동아시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대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외교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와 수준 높은 외교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볼 때 통일의 길은 멀어 보인다. 이전과 달라진 한반도 내의 높아진 국력을 활용하여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로 부터 엄정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데 이완범 교수의 ‘한반도 분할의 역사’(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최문형 교수의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지식산업사, 2001)이 도움이 되었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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