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방향을 전혀 가름 할 수 없었던 지난 연말,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에서 ‘중앙행정권한 및 사무 등의 지방 일괄 이양을 위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46개 법률 일부개정을 위한 법률안’(일명: 지방이양일괄법)이 제374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방이양일괄법은 중앙정부가 국가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겨주기 위해 개정되어야 하는 법률들을 하나의 법률에 모아 동시에 개정하는 법률이다. 이번 법률 개정을 통해 16개 부처 소관 46개 법률의 400개 사무가 한꺼번에 지방에 이양될 예정이다. 각 부처에 관련된 사무를 개별 법률별로 이양 여부를 결정하려면 전 부처를 대상으로 전선(戰線)이 형성된다. 모든 관련되는 국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지루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관련되는 모든 부처의 사무를 일괄법이라고 하는 하나의 법률을 통해 일괄적으로 이양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실 행정안전부와 자치분권위원회는 2004년 참여정부부터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을 적극 추진해왔다. 16년 만에 법안 제정이라는 성과를 얻은 셈이다.

이러한 사무 이양을 통해 지역특성을 반영한 행정과 주민수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져 주민 만족도가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도로 관리와 관련하여 도로 유지관리(자치단체)와 교통안전 관리(경찰청)의 이원화에 따른 업무 수행의 비효율성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지역주민의 안전 및 복리를 1차로 책임지고 있는 지방정부가 지역특색과 주민의견을 고려하여 교통안전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도로교통법’ 개정을 통해 횡단보도 및 보행자 전용도로 설치, 주차금지 장소 지정, 서행 또는 일시 정지할 장소 지정 권한이 특별시·광역시와 시·군으로 이양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해양수산부의 지방관리항 항만시설의 개발, 운영권한 등 ‘항만법’상 지방관리항 관련 41개 사무가 국가에서 시·도로 이양된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가 권한을 갖고 있는 전국 60개 항만 가운데 태안항, 통영항 등 17개 무역항과 진도항, 대천항 등 18개 연안항을 포함한 총 35개 항만시설의 개발권과 운영권한이 지방정부로 이관된다. 그리고 국토교통부가 수행하던 지역내 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초과이익에 대한 개발부담금 부과 관련 20개 사무와 보건복지부의 외국인환자 유치 의료기관의 등록 등 9개 사무도 시·도로 이양된다.

이를 통해 주민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정이 이루어짐으로써, 지방자치단체가 경제·산업·인구·지리 등 다양한 개별 여건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되며, 주민의 수요에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입법 방식을 통해 지방자치권 확대를 위한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향후에도 이런 방식이 자리를 잡게 되면,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분권의 관점에서 보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지방이양일괄법’은 2021년 1월 1일 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남은 기간 동안 지방정부가 이양 받은 사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행·재정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주민의 입장에서는 중앙정부가 수행하던 지방정부가 수행하던 서비스가 잘 전달되면 된다. 사실 우리의 지방정부는 능력과 책임성의 수준에서 매우 다양하다. 사무를 위임하더라도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 동시에 이양을 하여 주민에게 불편을 줄 가능성이 있으면 준비된 지역에 먼저 이양하는 등 속도에 차등을 둘 필요도 있다. 이양한 다음에 일정 기간 동안에는 집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여 문제점을 해소해 나가는 과도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무 이양에 따른 비용을 계산하여 경비 지원도 있어야한다. 사무를 이양하고 소요되는 재원을 이양하지 않으면 책임 전가이지 권한 배분이 아니다. 사무의 지방 이양이 지역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협력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원희 한경대, 한국행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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