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고종사촌의 재산상속채무를 물려받았으니 수십억 원 빚을 갚으라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렇게 억울한 경우를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영세한 자영업을 운영하다가 여의치 않아 접고서 경비원 생활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50대 후반의 남자가 울화통을 터뜨리면서 하는 말이다. 경비원은 지난해 초 법원으로부터 금융기관이 신청한 부동산 임의경매를 실시한다는 서류를 송달 받은 바 있다. 그때 법원은 그 부동산에 근저당권이 설정돼있어 그 저당권에 기한 경매를 실시한다고 통보하면서 경비원을 채무자 겸 소유자로 표시했다. 경비원은 그때 당장 특별한 피해가 없어 보여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이후 고종4촌은 부동산임의경매사건 외에도 많은 빚이 존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비원은 채권자들로부터 채권독촉을 받고서야 비로소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비원은 평생 동안 근검절약하여 모은 조그만 연립주택을 날려버릴 위기에 처한 것을 생각하니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밤잠이 오지 않았다.

경비원은 고종4촌으로부터 어떻게 재산상속인이 됐는가 알아봤다. 고종4촌은 40대 후반의 사업가였다고 한다. 그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빚을 내 부동산 투자를 벌여 놓고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를 받는 등 통 큰 사람이었다고 들린다. 그러나 그는 사업만 매진하다가 도저히 부채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약2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비원은 평생 그를 만나본 사실도 없었고 심지어 그의 존재조차도 잘 몰랐다. 당연히 그의 사망사실도 알지 못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처자식이 없어 그 사업가의 부모가 선순위 상속인의 지위를 갖게 되었는데 그 부모는 자식의 재산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재산상속포기를 한 것으로 돼있다. 다음 재산상속순위로 그의 형제가 됐지만 그 형제들도 재산상속포기를 했다. 그러자 다음 재산상속순위자인 방계 3촌 혈족들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위 경비원의 부친은 피상속인과 외3촌 관계에 있지만 약5년 전에 이미 사망하여 대습상속자인 4촌 관계의 경비원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재산상속인의 지위를 갖게 됐다.

민법상 상속재산 순위는 주로 적극재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겠지만, 피상속인의 소극재산이 더 많은 경우에는 선순위 상속인들이 상속포기로 인해 그 정을 잘 알 수 없는 후순위 재산상속인들에게 불측의 손해를 안길 위험을 가지고 있는 맹점이 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민법제1019조 제1항은 재산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니면 상속의 승인이나 포기에 관한 민법의 규정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부모형제가 상속을 포기한 후 다음 순위 상속인들은 피상속인에 대한 재산상황을 알지 못하여 무심코 법적대응을 간과해 버릴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민법상 규정되어 있는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이라 함은 상속인이 상속개시의 원인이 되는 사실의 발생 즉 피상속인의 사망을 앎으로써 자기가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날을 말하는 것이지 상속재산 유무를 안 날을 뜻하거나 상속포기제도를 안 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 법률은 이를 알지 못하였다는 사유만으로 그 적용이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비원이 법원으로부터 임의경매진행 통보를 받았을 때 적극재산이 소극재산보다 많다고 보아 상속포기 할 가능성을 생각 못했다거나 법을 잘 몰랐다는 것은 면책사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법을 잘 몰라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생명부지 고종4촌의 채무를 떠안아 모든 재산을 날리는 손해를 입게 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법원이 선순위 재산 상속포기 신고를 수리할 경우에는 후순위상속인들에게 민법상 규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제도를 도입했으면 좋겠다. 선량한 국민이 법을 잘 몰라 황당한 피해를 입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소망한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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