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에 대한 논란이 벌써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선거역사상 가장 긴 용지라는 전망에서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당인 민주당이 지난해 말 군소 정당에 유리한 선거법 개정안을 만든 탓이 가장 크다. 당연히 우후죽순 국회에 들어오려는 갖가지 형태의 신생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한 고육책으로 ‘가자’ 라든지 가나다순으로 정당 명칭을 짓는 바람에 보도 듣도 못한 정당 이름들이 난무하고 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기존 정당들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현역 의원을 보내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일들이 벌어지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과연 이런 것이 정치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어제자로 거의 등록한 정당에 숫자를 50개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중 20개는 선거법 개정 이후인 올해 창당한 것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기존의 정당수도 많지만 창당을 준비하는 창당준비위원회도 부지기수다. 이러다가 후보 등록 마지막 날까지 얼마나 많은 정당이 투표용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인지 조차 가늠이 안가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는 심지어 이들 정당이 과연 후보나 제대로 낼지 조차 궁금한 상황으로 비쳐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난 총선의 그 수 보다는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과거 다른 나라에서 1m 가 넘는 투표용지를 보고 놀랐던 경험마저 새롭다.

우리 역시 시대가 바뀌면서 바로 전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는 33.5㎝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 선관위는 올해 초반 39개 정당명을 기재할 경우 투표용지 길이가 무려 52.9㎝로 예측했는데 앞으로 이 길이를 넘어서면 섰지 짧을 가능성은 안 보인다. 그렇다고 그 칸을 적게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다. 당장에 50개 정당이 모두 후보를 내면 용지 길이는 66.㎝가 넘게 된다.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조차 민망함마저 앞선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서 선관위가 18년 만에 처음으로 수개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웃지못할 말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 강국이니, AI시대니 하는 말들이 무색하게 들리는 순간이다.

짐작하다시피 선거법 개정안으로 군소 정당들이 비례대표 선거에 얼굴을 마구잡이로 들이밀고 있다. 모두 민주주의와 정의를 내 걸고 있지만 과연 국민들의 어떻게 비쳐질지 이 역시 민망한 수준이다. 당장 당명을 봐도 알 수 있다. 과거의 당명을 그대로 내걸어 헷갈리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간 양당제로 가던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한 자신들의 정당 후보는 내지 않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빚어진 일이다. 알다시피 이번에 통합당은 총선에 불출마한 한선교 의원 등 9명을 한국당으로 보냈고 민주당도 비례당인 더불어시민당이 한국당 뒤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현역 의원 꿔주기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기본적인 심리로 정당들이 투표용지 순번을 욕심낼 수 밖에 없는 구조도 문제다. 유권자들이 앞쪽에 있는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서다. 비슷한 이름의 정당을 걸러내야 하는 작업이 진행됐어야 했다. 가득이나 코로나로 인해 모이기 힘든 상황에 수개표 얘기가 나오는 희한한 세상에 우리는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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