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이지만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학창 시절, K와 있었던 일이다. K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중년의 교사로 친절했지만 교무실에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말하면서 귀를 만지는데 기분이 몹시 안 좋았고 징그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결국 내게도 우려했던 그 일이 닥쳤다. K는 자신의 무릎 바로 앞에 나를 세우더니 두 팔을 뻗어 손으로 내 귀를 만지작거리며 느끼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그 순간 모욕감과 수치심이 들었지만 뿌리칠 수 없었고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어린 소녀들에게 그런 변태적 행동을 하면서 K는 성적 쾌감을 느꼈을까? 옆자리의 교사들은 그런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을까? K는 교사의 탈을 쓴 악마였을까?

‘n번방 사건’으로 통칭되는 디지털 성 착취 영상 유포 사건의 피의자 조주빈은 3월 25일 검찰로 송치되는 과정에서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언론의 마이크가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 그는 준비했던 멘트를 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언론은 또 그를 악마로 몰고 간다. 그는 과연 악마일까? 평소에는 정상적이고 오히려 소극적인 편인데 ‘박사’라는 타이틀을 다는 순간 잔혹해지는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일까?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에 대해 언론은 악마나 짐승, 정신이상자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예외적으로 그 사람만 이상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반면 피해자에 대해서는 ‘씻을 수 없는’ 혹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가엾은 희생양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폭력의 연원을 따져보면 거기에는 항상 ‘권력’과 ‘명명’, 그리고 ‘이분법’이 존재한다. 하늘과 땅, 바깥과 안(집), 정신과 육체, 감독과 신인 여배우, 상사와 부하직원 등 힘을 가진 자에 의한 이름 짓기와 구분이 있다.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와인스틴 감독 사건이나 김기덕 감독 사건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폭력 문제, 직장에서의 성폭력, 가정 폭력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여성에게 힘을 휘둘러도 괜찮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건의 가해자들은 악마나 짐승이 아니라 대부분 멀쩡하게 직장과 학교를 다니고 작품을 만들며 정치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n번방 사건의 수사가 진전되고 연루된 사람들이 밝혀질 때 우리는 그들의 평범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숫자는 대략 반반이고, 일하는 여성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일터에도 여성의 숫자가 늘었지만, ‘힘’을 가진 쪽은 언제나 남성이다.

중앙부처의 과장급 여성 비율이 20.8%로 늘었다고 하지만 남성에 비하면 5분의 1에 불과하다. 고위직으로 가면 비율은 7.9%로 떨어진다. 기업의 경우는 더 처참하다. 우리나라의 상위 200대 상장사의 등기임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2.7%인데 미국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정치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21대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 가운데 여성 후보의 비율은 19%(213명)에 그쳤다. 비례대표까지 합친 20대 여성국회의원의 비율은 17%이다. 몇 가지 수치만 봐도 누가 힘을 가졌고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지 금방 알 수 있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의사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 여성의 비율은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현실이다.

결국 돈을 쓰거나 법을 만들거나 승진을 시켜주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양이 아니라 질로 볼 때 양성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젠더 폭력의 근원에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존재하며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는 한 n번방 역시 이름을 바꾸며 진화할 것이다. n번방의 박사는 ‘주인’으로 여성은 ‘노예’로 불렸으며 잔혹한 성 착취 영상의 관람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깔린 강간문화의 실체를 드러내었으며 젠더 폭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피해 여성들은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이들과 함께 분노하고 저항하며 문제해결과 제도 마련을 위해 힘을 모으는 중이다. 악마도 없고,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없다. 실패한 범죄자와 그에 맞서 싸우는 여성이 있을 뿐이다.

홍숙영 한세대 교수, 융합스토리텔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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