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주위를 살펴보니 지나간 세월이 다년생 빙하처럼 두께가 두껍고 무거우며 단단하게 느껴집니다. 지난 세월이 두꺼워질수록 가벼웠던 것이 무겁게만, 낮은 곳이 높게만, 가까운 곳이 멀게만 느껴지고, 잘 들리던 소리가 어둔하게, 잘 나오던 말도 더듬거려집니다. 그것들 세월이 갈수록 더해집니다. 잘 낳고 못 낳고 가진 것 많고 적고 그런 것들 소용없이 너나 나나 한결같습니다. 더 없이 평등합니다.

그런가하면 이루고자 했던 꿈이 멀어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세월은 마치 태풍이 스치듯 빨리 지나갑니다.

하고 많은 세월 지나고 나면 남은 건 티끌뿐입니다. 결국 티끌 하나 더 갖기 위해 안간힘을 쏟습니다. 그 티끌 무엇이 그리 좋아 아옹다옹 모으고 쌓으려는 것인지 지나놓고 보면 부질없는 짓들입니다. 눈앞에 티끌이 보이면 몸 안의 욕심이 발동 이웃과 아귀다툼을 하게 됩니다. 지난날 이기주의에 갇혀 아귀다툼을 했던 것 두툼한 세월에 눌린 훗날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짓이었구나? 후회를 합니다.

뒤늦게 깨우칩니다. 나이를 먹어 늙고 병들게 되면 곁에 있는 티끌도 하나 둘 떠나 보내야합니다. 생각은 그러면서 행동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 것이 인간입니다.

안타깝게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은 더합니다. 욕심! 그 욕심이 낭떠러지 가시밭인줄 알면서도 그 욕심을 쫓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다가 자칫 잘 못되면 순간에 허물어집니다. 물거품이 됩니다. 공든 탑이 무너집니다.

지난 날 온갖 정성을 쏟아 쌓아 온 세월 망신살 뻗혀 만인의 조소 속에 물거품 날리 듯 날리고서야 발 동동거리며 이것이 아닌데 아니야 하며, 무거운 짐 벗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티끌 끓어 모으는 버릇 털지 못하고 붙잡고 힘겨워합니다.

어깨에 걸어 멘 짐 무거워 안절부절 하면서도, 하나라도 더 갖고자 바동바동 허겁지겁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옮기려 온갖 힘 다 써 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쇠약해질수록, 정신이 흐려질수록, 모아 놓은 티끌 보면 눈부터 무거워집니다. 그런 생각에 이를 때에는 저런 것들을 어떻게 할꼬? 하다 보니 그 티끌 속에 묻혀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해가 뜨고 지며 쌓인 세월, 그 세월만큼 마음도 몸도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마음은 지쳐 자포자기에 이릅니다. 주위가 산만하고 어수선 할수록 더 욱 더 무거워집니다. 그것이 바로 곁을 떠난 세월, 곁을 스쳐가 버린 세월 때문입니다. 그 세월 쌓인 티끌만큼이나 무겁습니다. 그 무거운 짐, 후세들에게 남겨 놓게 됩니다.

흘러 보낸 세월이라는 짐, 그 짐, 무겁기로 말하면 더한 것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 없습니다. 그렇게 지난 세월의 무게는 무겁습니다.

그 무거운 세월 등에 지고 무엇이 부족해서인지 무슨 미련이 많아서인지 더 살며 더 모으려고 바동거립니다.

요즘 그런 사람 부지기수입니다. 남이 가져보지 못한 권력을 쥐고 남이 가져보지 못한 재물을 가지고도 더 많은 욕심에 빠져 이곳저곳 넘나들며 부당한 것들 움켜쥐다. 그 무게에 눌려 끙끙거리는 안타까운 사람들 그들 보노라면 지네들은 잘 낳고 똑똑하다고 하련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 눈에는 미련스러워 보입니다.

조금 더 오르면 무엇하고 조금 더 가지면 무엇 합니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어 결국 빈손으로 갈 것. 세월과 순리 함께해야 잘 사는 것입니다. 순리 저버리면 가는 곳 따로 있다는 것 알아야 합니다. 요 근래 권력에 재물에 눈이 멀어 순리 저버린 사람 많아 안타깝습니다.

새뮤얼 버틀러는 ‘인생은 많은 사람 앞에서 바이올린을 홀로 연주하면서 그 악기를 배워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한정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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