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주춤한 것 같았던 코로나19가 또다시 확산되는 분위기다. 5월초 하루 10명 이하로 떨어졌던 확진자 숫자가 다시 늘어나면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4월말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 재확산 기조는 교회나 콜센터 같은 집합시설과 소집단 모임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초·중·고등학생들의 등교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사람들의 일상 활동 역시 재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위기위식과 방역대책에 대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노래방, PC방, 유흥업소와 공공시설 출입 시 QR코드 체크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미 공공시설이나 체육시설 출입 시 서명과 본인 확인을 실시하고 있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QR코드는 단순히 해당 시설 출입 뿐 아니라 개인들의 모든 일상이 마음만 먹으면 노출·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한마디로 개인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감시·통제할 수 있는 첨단 장치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역설적으로 고도화된 네트워크와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자택근무, 원격화상회의 같은 비대면 활동들이 활성화되는 것은 어쩌면 고무적인 일일 수도 있다. 과거 다니엘 벨(Daniel Bell)이나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주장처럼 ‘장미빛 미래사회’가 한발 더 현실로 와 닿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점은 어느 누구도 이 같은 감시제도에 대한 반대는 고사하고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세계 최초로 전자주민등록증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우리 정부가 발표했을 때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정보도용 같은 인권문제를 들어 강하게 반대했던 인권·시민단체들 누구도 우려의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이태원 클럽에서 감염된 모 학원 강사가 자신의 행선지를 감추었다고 해서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에 바탕을 둔 네트워크 사회에 대해서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조지 오웰(George Owell)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Big Brother) 같은 감시사회가 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공존해왔다. 때문에 1980년대 이후 상용화된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기술들은 상반된 시각이 상호 견제하면서 산업적·사회적 목적과 개인의 사생활보호 간에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같은 4차산업혁명 기술들에 대해서는 이 같은 균형된 인식이 붕괴된 것 같다.

한마디로 기술결정론 아니 기술낙관론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다. 경제적·산업적 효율성이라는 명제아래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인권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있는 모습이다. 도리어 개인의 모든 사적 활동 더 나아가 태도나 인식까지도 빅데이터에 저장되고 인공지능에 의해 가공·처리되어 상업적 재화로 활용되고, 정치·사회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용자들의 메시지를 근거로 사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내가 원하는 콘텐츠와 동영상을 추천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더 많이 노출해 더 많은 편익을 획득하는 ‘기술적 역설(technological paradox)’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자신의 선호와 편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용자들 스스로 자신의 정보를 노출해주는 ‘자발적 감시사회’에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200년 전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Jeremy Bentham)이 구상했다는 소수의 간수들이 다수 죄인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이 네트워크 공간에서 구현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위기상황은 이 같은 첨단 감시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약화시키고 도리어 자발적 감시체제 편입을 정당화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대처하면서 많은 나라에서 강한 통치력을 지닌 지도자를 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 역시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에릭 프롬(Eric Fromm)의 말했던, 위기의식과 고립감이 팽배하게 되면 사람들은 강한 권력에 스스로 지배당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는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결국 권위주의 정치를 정당화시키는 메커니즘이 된다. 당장의 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첨단 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균형된 인식과 조율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황근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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