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국도변 스미스평화관을 지나면서 새삼 1950년 7월 5일 새벽, 미군 소속 특수임무부대 스미스부대의 희생을 생각한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딱 열 흘째 되는 날 스미스부대는 오산 죽미령 고개에 진지를 구축했고 적지 않은 부대원들이 여기서 전사했다. 스미스부대의 화기라 해 봐야 이날 오전 8시부터 T-34 전차를 위시해 진군을 시작한 북한군에 대항하는 105㎜ 곡사포와 75㎜ 무반동총, 2.36인치 로켓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오로지 투혼으로 지키다가 처음 540명에 불과한 스미스부대는 전차와 5천 명의 보병을 상대로 오후 2시 30분까지 6시간 30분에 걸친 혈투를 벌여 결국은 오산시 은계동으로 철수한다. 당시 살아남은 스미스부대 병력은 185명으로 한국전쟁사에 길이 남게 된다.

물론 반나절에 그친 패전사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오산 죽미령 전투는 6·25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로 각인되며 알려진 대로 북한이 개전 초기 유엔군 참전을 확인하면서 남진을 10여 일 가량 늦춰,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충분히 벌게 된 귀중한 전투사로 남아있다. 본보가 한국전쟁 후의 재조명을 기획취재한 이곳 죽미령에는 다음달 5일 개장을 앞둔 죽미령 평화공원이 중심에 있다. 설치된 스미스부대원 조각상이 망원경으로 전방을 관측하고 있는 사진에는 오산시가 역사 교육을 넘어 미래교육을 향한 첫걸음을 준비 중이란 사실도 알 수 있다.

사실 한국전쟁 죽미령 전투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1번 국도변 죽미령 고개에 자리 잡은 유엔군 초전비를 기억하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제 곧 이곳은 분단 역사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있게끔 한 죽미령 전투를 기억하는 평화·역사 교육의 장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고 있다. 사실상 그간 오산시가 교육도시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10년이 흐르고 그 결실을 맺는 평화교육 시설 ‘죽미령 평화공원’이 오는 정식으로 문을 열면 또 하나의 중요한 체험공원으로 자리매김할 공산이 크다. 5년 전 시작된 죽미령 평화공원 조성 사업은 유엔군 초전기념비 일대에 198억 원을 들여 지난해 말 준공한 바 있다.

알다시피 오산시는 교육도시를 표방하며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선정, 생존 수영교육 전국 확대,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 가입, 일반고 얼리버드 프로그램 등 10여 년에 걸쳐 교육도시 오산이라는 브랜드를 완성해왔다. 이어 완성된 이곳 평화공원도 한국전쟁 당시 낯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스미스부대 장병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역사교육시설로 남는다. 오산시가 민선 5기부터 추진해온 교육도시 프로젝트 대장정의 결실이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평화통일의 의미를, 세계인에게는 유엔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가 길이 남길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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