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유로 2020(UEFA EURO 2020) 축구대회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축구 애호가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구단별 경쟁이 아닌, 국가 대항전이었던 이번 대회는 출전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같은 팀 소속의 동료인 경우가 많았다. 각각의 소속팀에 속해 리그를 소화하는 동안 그들은 공동의 목표 아래 굳건한 우정을 과시한다. 하지만 국가대항전이라는 큰 경기에 임할 때면 그들은 소속팀 선수라는 관계를 떠나 경쟁상대가 되는 운명을 떠안는다. 우정이 순식간에 라이벌 관계로 급반전한다. 인류 역사 발전에서 또는 우리의 팬심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가 라이벌 관계이다.

16세기 헨리 8세 사후에, 그의 배 다른 딸이자 자매 사이였던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여왕은 동생 엘리자베스가 권력을 회복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했다. 메리 여왕은 동생을 런던탑과 시골에 있는 낡은 저택 등으로 유배를 보내는 등 권력욕으로부터 멀어지기를 바랐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많은 서신들에는 다양한 수사와 정치적 협박, 그리고 감춰진 속내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1세는 언니 메리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뒤에 여백이 남을 경우, 빈 공간에 언니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짜 글을 첨가할 것을 피하기 위해 가위로 여백을 잘라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둘 사이의 라이벌 관계에서 결국 언니는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오명을 남긴 채 역사의 뒤쪽으로 사라졌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성모 마리아에 비견될 만큼 존경 받는 군주로 영국을 정치적, 종교적 혼란으로부터 구했다. 그 덕을 국민들이 맛보았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출신의 정복 왕 알렉산더가 당시 경쟁자였던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에게 남긴 편지글이 있다. "앞으로 당신이 나에게 대화를 하고 싶을 경우 그 수신인을 ‘아시아의 왕’으로 하시오. 나에게 동등한 입장으로 편지하지 마시오… 당신이 나에게 어떤 것을 원할 경우, 내게 예의를 갖춰 물을 것이며 그렇게 않으면 당신을 범죄자로 취급할 것이오." 알렉산더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반드시 상대방에게 꼭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말을 남긴 것이다.

알렉산더의 편지글은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 한 번쯤 저런 편지를 머릿속에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왜냐하면 알렉산더의 편지글만 보면 다소 부당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공식적인 편지글은 아닐지라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나의 라이벌에게 때로 신랄한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벌 관계는 혈육이든지, 군주와 충신 사이든지, 아니면 깊은 우정을 평생 나눈 친구와의 관계를 상관하지 않더라는 것이 역사의 전언이다.

알렉산더 또는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는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의 경쟁적 일면을 언급한 것이지만, 경쟁 또는 라이벌 관계는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세기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가장 우월한 것만이 생존하고 진화한다는 것이 인류 역사나 사회발전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하는 진실이라면 인간 라이벌 사이의 파멸은 인간의 원초적 기능들 중 가장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인간의 경쟁관계는 태어날 때부터 발생한다는 것이 학제적 연구의 결과다. 평범한 사람들의 라이벌 관계는 대부분 자신과 가까운 몇몇의 삶에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라이벌 관계가 역사 전체의 항로를 바꿨던 경우는 부지기수다. 따라서 라이벌 관계를 분석하면 하나의 일관된 결과가 나온다. 경쟁관계에 있는 그들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공통된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에 그들이 경쟁했던 목표와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을 찾아내면 그 둘은 결국 닮은 꼴임을 알 수 있다.

라이벌의 본질이 무엇이든, 그것은 다양한 역사와 복잡한 요인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진 라이벌 관계가 우리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세계의 윤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준다. 어쨋거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진리에 가깝다. 라이벌들의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차종관 목사(세움교회/성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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