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 일정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을 방문으로 시작한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이나 시급한 현안이 있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 벌써 여섯 달째로 접어들었다. 출근 시간 전에 복귀한다는 일정에 따르다보니 새벽에 집을 나설 때가 많다. 군말 없이 챙겨주는 아내가 고맙고, 이를 견딜만한 체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새벽안개를 뚫고 아침 7시경 마을에 도착하면 이장님과 시정에 관심이 있는 몇몇 주민분들이 반긴다. 인사와 덕담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마을 숙원 사업이나 건의 사항으로 이어지는데 읍면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질적인 민원인의 하소연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도 이때다.

아시다시피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을 목민관이라 불렀다. 목민(牧民)이란 말은 맹자가 백성을 돌보는 일을 건초를 먹여 가축을 기르는 추목(芻牧)에 비유한 데서 비롯됐다. 맹자는 지방관의 임무를 왕을 대신해 법전의 조문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치민(治民)에 그치지 말고 가축을 돌보듯 보살피라는 뜻을 일깨워준 것이다. 나는 그 돌봄의 시작을 현장 대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70여 곳의 마을을 방문하면서 받은 건의 사항이 200여 건에 이른다. 산북면 용담리 마을에서 건의한 용담천 구룡소를 아이들의 자연 체험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축산과에서 적극 검토하여 그렁치 1만수, 붕어 4만수를 용담천에 방류하는 뜻깊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예산이 수반되거나 다른 기관과의 업무 협조가 필요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여주시에는 12개 읍면동에 310개 마을이 있다. 좀 더 일찍 현장을 찾아가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다. 하지만 시정 초기에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할 조직을 갖추는 것이 더 우선이기 마련이다. 취임 이듬해가 돼서야 마을회관에서 숙박을 하며 주민과 대화하는 1박2일 소통투어를 시작하긴 했으나 그마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발생해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법의 규제를 받으면서 국가의 목적이나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을 행정이라 정의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시대정신에 따라 또 신념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행정이란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집단적인 협동 행위라는 데에 더 무게를 둔다.

시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 정치적인 행위이지만 행정의 기능을 관리와 집행에 가두지 말고 공공 문제의 해결과 관련된 활동으로 확대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마을 방문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얼마 전에 방문한 한 마을은 내가 십여 년 전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오래 머물며 주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던 마을이다. 그때 마을 이장님과 주민들이 내게 보여준 뜨거운 박수와 따듯한 충고가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자양분임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목민을 이야기하면서 수신(修身)을 강조한 까닭을 이제야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항진 여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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