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정치 참여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한국 가톨릭교회 내에서도 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신부님, 제발 강론대에서 정치 얘기 하지 마세요." "신부님, 지금 이 시국에 교회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가요?"

물론 종교가 직접 정당을 만들어 정치 참여를 하거나, 정부를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종교의 존재 이유는 정치가 아닌, 인간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종교가 정치적 사안에 함구하고, 개인 구원에만 몰두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불의가 만연한 사회적 상황과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은 외면한 채 내세의 구원만을 가르치는 종교는 참된 종교로 인정될 수 없다.

종교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 함구할 수 없는 이유는, 종교가 인간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도 궁극적으로 인간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기에, 정치와 종교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지만, 최악의 조합이 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상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여 인간에게 해를 끼친 적도 많기에, 종교를 내세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적도 많기에, 둘 사이에는 언제나 균형 잡힌 비판적인 관계가 요구된다. 정치적 사안에 종교가 입장을 표명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바로 내일이다. 이번 대선은 ‘혐오 대선’이라고 해서, 선거 초반부터 유력 양당 후보 간 흠집 내기 경쟁이 막판까지 이어졌다.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러한 선거 풍토는 한국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다 인간다운 내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정치가 실제로는 인간 사이에 갈등과 마찰을 조장하고, 막말로 서로를 헐뜯고 험담하며 혐오까지 이어진다면, 정치는 머지 않아 사람들의 신뢰를 더욱 잃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며칠 전 속초에 있는 동창 신부의 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미사를 마치며 동창 신부는,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공명지조(共命之鳥)(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를 언급하며, 우리가 서로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잘 살 것처럼 여기지만 실상 함께 멸하고 마는 ‘운명공동체’임을 일깨우며, 선거의 결과가 어떻든 함께 화목하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신자분들께 제안하였다.

종교의 가장 큰 장점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가 이해관계로 인해 한편에 치우쳐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종교는 그러한 이성을 정화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라고 촉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종교는 이해관계가 아닌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 그 진리란 다름 아닌 인간이며, 인간에게서 지울 수 없는 고귀한 인격이다. 그 인격이 존중되는 사회,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가난하고 버림 받는 이들이 존엄한 인격을 잘 지키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종교는 정치의 벗이 되어 투신해야 한다.

선거일을 하루 앞둔 오늘 종교가 한국 사회를 향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진정한 인간 발전의 길에서 한국 사회는 어디쯤 와 있으며, 이번 대선은 어떠한 기여를 하였고 어떠한 과제를 남겼는가 하는 물음일 것이다. 적이라고 해서 무작정 상대를 폄하하기보다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루어 온 사회의 분야별 발전상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와 함께, 그에 따른 일관성과 연속성 있는 나라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로 발돋움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헛된 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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