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로나로 인해 배출되는 일회용 쓰레기의 포화상태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여도 일회용 문제는 날로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쓰레기 배출일은 매주 목요일이다. 조금이라도 분리수거가 잘못되었거나 묶어 놓은 상태가 불량하면 여지없이 가져가지 않는다. 어느 곳 보다 더 엄격한 분리를 요구한다. 분리수거를 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뉴스 1면을 장식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생각이 나는 것은 왜일까. 쓰레기라고 다 같은 쓰레기가 아닐 텐데. 썩지 않아 재활용이 불가능해 지구를 병들게 할 것에 대한 염려에서이다.

사는 게 바빠 세상사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모이면 몇몇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해 가십처럼 이야기 한다. 그들의 상식에 벗어난 행동과 정도에 벗어난 행동을 보면서 저 인간들(?)은 분리수거도 아깝다는 말을 하곤 한다. 분리수거를 하면서 질타를 받는 사람들은 어떤 품목으로 분리를 해야 할까, 쓸모없는 객기로 고민을 해 보면서 결론은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살아가는 삶을 돌이켜보면 어려서는 철모르는 아이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꿈을 키우던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 사회의 첫발을 디딜 때는 열정과 희망을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성장하면서 사회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속된말로 분리수거용으로 성장하는 이들은 부모의 추악한 욕망의 대물림을 위해 키워지거나 그들만의 세상이 전부로 알고 성장해 결국 분리수거용으로 낙인이 찍힌다.

가끔씩 뉴스를 보면 삐뚤어진 공정과 상식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보통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 배려와 예의 등에 대한 것들을 가르치게 된다. 부모들은 이해와 칭찬과, 때로는 꾸지람으로 훈육을 통해 잘 자라주길 진정으로 바란다. 또한 부모들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사회규범을 가르치면서 사회성을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일부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특권의식으로 사회 원리의 근본이 무너지고, 나만의 특권 의식 속에서 자란 퇴적물은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지도층의 탈상식과 탈공정성은 미래의 주역으로 커가는 아이들에게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청년들에게 열심히 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 허방이 되고, 기성세대들에 대해 불신의 시각을 갖게 했다. 특권 의식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 부모들의 뒤를 이어 사회지도층으로 나라의 주역을 맡게 된다면 하는 상상만으로도 무섭고 끔찍하다.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이 부끄러워지는 것은 왜일까. 희망보다는 앞날이 암울한 이 시점에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응원하면서 자신 있게 로드맵 할 수 있을까.

몇몇 나랏일 하시는 분들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면 분리수거 품목을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과하게 표현을 하면, 분리수거를 해도 어디다 버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거리이다. 폐기물 처리하는 것도 어렵고, 지구밖에 버리려 해도 오염 문제로 또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기에 난감함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을 쓰레기(?)로 분류하는 것에 자괴감마저 든다. 쓰레기 사용은 의지에 따라 줄일 수 있으나, 분리수거용도 못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폐기물이 안 되도록 노력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보려 한다.

무능한 사람이 악인이 아닌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건전하고 참모습으로 살아가는 잉여 인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은주 늘솔길교육연구소 소장,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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