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인 오브제, 강력할 색채로 작품을 그려내는 이혜라 작가는 그림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치유는 예술의 또 하나의 역할로 작품을 통한 감동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직설적이고 강렬한 그의 작품은 거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 거북한 순간이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순간이라고 역설한다.

나도 모르게 깊은 내면에 침잠해 있던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수치심을 날 것으로 만나게 된다는 얘기다.

분명 나의 것이지만 오래도록 잊고있어 낯설고, 내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불려와 나의 것인지 몰라 불편하다.

이 작가는 이러한 불편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성남시 영체 갤러리에서 이혜라 작가가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근수기자
성남시 영체 갤러리에서 이혜라 작가가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근수기자

◇직설적인 오브제=눈, 꽃, 칼. 촛불, 똥 등 이혜라 작가의 작품은 한눈에 보기에도 강렬한 오브제들이 작품의 중심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작품들은 화려하기도 때로는 기괴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오브제들은 조선시대의 문인화와 같이 작가 나름의 의미를 담아 동일한 오브제에는 동일한 의미를 담아 그려진다.

가장 시선을 끄는 오브제는 눈이다.

50호 가량의 대형 작품에서부터 10호 작품까지 가장 많이 등장한다.

당신의 아픔을 치유해드릴게요
당신의 아픔을 치유해드릴게요

이 작가는 "사람은 다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똑같은 현실도 다르게 바라본다.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은 자신이 가진 눈에 따라 달라진다. 분노의 눈을 가진 사람은 분노를, 슬픔의 눈을 가진 사람은 슬픔을,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설명을 풀이하면 결국 눈을 바라본 눈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칼은 더욱 직설적이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현대인의 마음 속에 한 자루씩 품고 있는 칼이다.

무의식 속의 칼을 자신도 모르게 휘두르고 있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아서 결국 자기와 다른 사람을 다치게 만든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그림을 통해 칼을 직접 꺼내드는 것으로써 마음 속의 칼을 보여주고 자신과 상대방의 아픔을 느끼고 종국에는 순화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꽃은 주로 여자의 아픔을 다루는 데 사용된다.

여자는 자기 내면에 약한 존재가 있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 또 그런 자신을 수치스러워 한다. 하지만 못내 이 수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과 그 수치스러운 마음을 꽃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무의식에 존재하는 그 마음을 인정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촛불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오브제이다.

자신은 녹아내리고 죽어가면서 세상을 밝히는 어마어마한 사랑을 상징한다.

이 작가는 "촛불을 보면 가늠하기 어려운 아픔과 사랑을 진하게 느낀다"고 털어놨다.

또 촛불 앞에 서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무의식이 치유되는 기분은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오브제로 선택한 이유다.

똥은 분별심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는 괴로움과 존재의 수치를 의미한다.

작가는 "똥을 통해 더러운 나의 존재를 보고 끝내는 구분짓는 마음에서 벗어나 똥조차도 사랑스러울 수 있고, 고귀함과 더러움은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사람들이 내면의 수치를 똥 그림을 보며 배출하기를 바라고 있다.
 

성남시 영체 갤러리에서 이혜라 작가가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근수기자
성남시 영체 갤러리에서 이혜라 작가가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근수기자

◇강렬한 색채=금색, 형광색, 빨간색, 흰색 등 이 작가가 형형색색의 과감한 색채를 작품에 사용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은 예쁜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무의식을 표현한 것"이라며 "작품의 제목, 오브제 그리고 강렬한 색감은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려 치유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영체갤러리 정중앙에 위치한 금색 장미 그림은 중세시대 고풍스러운 타일과 같은 디자인으로 전체 갤러리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 작가의 작품에서 주도적이던 간접적이던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금색은 풍요로움과 귀족적인 성격을 대변한다.

이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물질적이고 절대적인 빈곤은 사라졌지만 상대적인 박탈감, 마음의 빈곤은 더욱 깊어졌다"고 짚었다.

이어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가 만든 상대적인 박탈감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아무리 잘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고, 중산층이고 괜찮은 삶인데도 부족하고 불안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작가에게 금색은 마음의 박탈감을 풍요롭게 채워 줄수 있는 색이자 인격적이고 풍요로운 마음을 더해주는 색이다.

우리가 놓친 근본적인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다.

보통 그림에서 만나보기 힘든 형광색도 그의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채도가 높은 형광색의 사용은 형광색을 품격이 낮은 것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하는게 관념에 대한 도전이자 형광색에 담긴 동심을 되돌아보는 색이다.

이 작가는 형광색을 아이의 마음과 동일시 한다.

매일 혼나고 치이는 일상 속에 현대인들에게 즐거운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현대인의 마음은 깜깜하고 절망이 가득하다.

이 작가의 형광색 작품은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고 어두운 마음에 환한 불을 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형광색이 즐거움의 색이라면 작가에게 흰색은 치유의 색이다.

사람들의 치유를 기원하고 희망하는 이 작가의 특성 상 흰색도 많이 사용한다.

이 작가는 흰색에는 사람을 순결하고 순수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하얀 눈밭을 아기와 동물들이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

흰색은 작가에게 존재를 인정 받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자신의 원형을 직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같은 마음이지만 다른 경로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하는 색도 있다.

빨간색은 피의 색, 소리 없는 전쟁과 같은 현대의 삶 속에서 피폐해진 마음과 공격성을 상징한다.

작가는 두려움, 공격성 등을 현대인이 가장 인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빨간색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이유는 엄청난 미움과 공포를 표면의식에서 마주해 극복하는 일종의 ‘극약 처방’이자 강력한 치유의 의식인 셈이다.
 

◇치유의 바라는 마음=이혜라 작가의 작품만이 소개되는 영체갤러리의 이름에는 인간 무의식 속 영감의 원천, 치유의 원천, 무한한 가능성의 에너지라는 뜻이 담겨있다.

갤러리 이름에도 자신도 인정하지 못했던 마음과 만나고 위로받고 보호받고 풍요함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갤러리는 무료로 개방했는데 작품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감정이나마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이 작가는 "치유를 못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고 하는 것이 치유"라며 "자신의 인생을 자각하고 돌아보는 것이 예술의 기능인데 그동안 예술이 그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이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하고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워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돼 안타깝다"며 "예술가들이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지 못한 것, 그동안 잊혀진 예술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서 전시를 한다"며 자신의 지론을 설명했다.

이혜라 작가는 5월에 ‘기적의 치유’ 전시를 준비 중이며 영체갤러리 역시 부산, 대전, 경남 하동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안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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