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과 먹는 밥은
찌개 국물에 딸 숟가락 아들 숟가락 드나들어
침이 조미료가 된 감칠 맛
마누라 입가에 붙은 밥알을 떼어 입 속으로 넣으면
와이셔츠에 묻은 립스틱을
행여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맛

애인이랑 먹는 밥은
밥 한 숟가락에 눈 한 번 쳐다보고
밥 두 숟가락에 입 한 번 쳐다보고
목으로 밥 넘기는 소리를 듣는 맛
그의 목소리가, 몸짓이 반찬인 맛

윗사람과 먹는 밥은
그 사람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먹을 수 있는 밥
엉덩이 한 번 들썩거리기 힘든 맛
눈이 마주칠까 밥상 모서리만 긁는 맛
쩝쩝쩝 소리 날까 안절부절하는 맛

혼자 먹는 밥은
찬 물에 밥을 말아 끼니만 때우는 맛
인간극장 틀어놓아도 위안이 되지 않는 맛
소주 한 잔에 무너지는 맛
고성방가, 뽕짝을 멋있게 뽑다가
괜히 울컥해져 눈물을 훔치는 맛
 

안정현 시인

2019년 문학과 비평 신인상
2020년 자랑스런 경기문학인상 수상
문학과 비평, 경기문학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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