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북 완주에 있는 지방자치인재개발원 특강을 갔었다. 아침 10시 강의여서 하루 전날 내려갔다. 인재개발원의 강사용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얼마나 크게 지저귀던지 피곤한 몸이었음에도 잠이 깬 것이다. 새벽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감히 들어볼 수 없었던 새소리는 시끄럽기는커녕 황홀하기까지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참 불행하게 살고 있구나!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 도시에 사는 것은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다. 대도시는 교통망과 문화 기반 시설이 좋고 다양한 의료 기관과 교육 여건도 나름 좋다. 그러나 이런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새소리도 듣지 못하고 사니 이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전원주택을 갈구하지만 실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하나의 바람에 그치게 된다. 이때부터 도시에 살고 있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 멈추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다시 집 앞에 있는 만석거 저수지에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최근 저녁 자리가 많아져서 몇 달간의 다이어트가 물거품이 되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운동의 상쾌함도 좋지만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저수지를 한바퀴 돌고 가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맹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석거 옆에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아주 작은 습지가 생겼다. 이 습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데, 이곳에 맹꽁이 녀석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맹꽁이가 2급 멸종 위기종이 되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이 녀석들이 귀신같이 이곳에 왔다. 이 녀석들은 걷기에 전념하는 무수한 시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어려서는 맹꽁이 소리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나이가 먹어서인가 참으로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순히 맹꽁이 소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잊혀졌다고 생각한 맹꽁이 소리를 다시 듣게 되어 그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너무도 흔한 것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봄에는 강남에서 왔다는 제비가 온 마을에 가득했다. 가을이면 잠자리가 들판과 학교 운동장에 가득했다. 반딧불이는 광교산 곳곳에 여름과 초가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별똥별 떨어지는 것을 수시로 볼 수 있었지만 이제 이런 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난 정말 개구리 우는 소리를 좋아했다. 개구리가 우는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 지금 광교산과 붙어 있는 광교신도시 한 마을에서는 개구리 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 사는 지인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경제적 현실 때문에 그곳에는 갈 수가 없다. 나중에 그 지인의 집에 가서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오는 것으로 대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같이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지방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일까?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생태공원을 만들거나 아파트 단지에 작은 습지를 만들 수도 있지만 큰 틀에서 지방정부가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고 시민들이 도심의 아파트 숲에서 최소한의 자연 친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마을만들기 운동에 앞장서는 지역 주민들과 그 마을을 가장 잘 아는 지역의 어른들 그리고 열정이 가득한 공직자들이 함께 모이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만석거 맹꽁이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행복을 얻는다. 내가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아침에 새소리에 잠을 깨고 이곳에 작은 웅덩이에서 맹꽁이,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 잠을 자고 싶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