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 사진=중부DB
김진표 국회의장. 사진=중부DB

"오죽하면 내 별명이 ‘미스터 튜너(Mr.Tuner·조정자)’겠나."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국회의장은 국가의전서열 2위다. 27일 국회 의장실에서 만난 김진표 의장(수원무)의 이 한마디는 21대 후반기 국회의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 집권초 정국의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 간 힘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김진표 의장이 이끄는 입법부는 ‘대립’에서 벗어나 ‘동행’을 소중히 여길 거라는 메시지다. 김 의장이 지난 4일 국회의장석에 처음 올라서 말한 ‘대화와 타협이 꽃피는 국회’, ‘삼권분립의 원칙에 충실한 국회’, ‘헌법기관의 역할을 다하는 국회’가 그 알갱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과 판단의 기준은 유·불리가 아닌 옳고 그름으로 해야 한다’는 김진표 의장의 좌우명이 더욱 돋보여지는 이유다.

-경기도에서 문희상 의장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국회 의사봉을 쥐게 되셨다. 소감을 밝혀달라.

"우선 저를 믿고 다섯 차례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신 지역구민과 수원 특례시민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국회의장으로 지지해주신 여야의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막상 국회의장이 돼보니까 여기까지 오는 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민들이 민주당 의원들을 많이 당선시켜주시고, 특히 중진의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경기도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비록 2년 간의 짧은 임기지만 많은 성과를 낸 국회의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존경하는 문희상 전 의장님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을 지내신 선배님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수원시뿐만 아니라 경기도, 나아가 전 국민이 잘살 수 있도록 민생문제 해결에 최대한 신경을 쓰겠다."

-수원군공항 소음 피해 문제와 군공항 이전에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동안의 노력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신다면.

"경제부처에서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끝내고 지난 2004년 정치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수원 제10전투비행단’을 이전하고, 그곳에 한국의 실리콘 밸리를 조성해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3년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수원 제10전투비행단 이전 근거를 제일 먼저 마련했고, 오랫동안 군공항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군공항 소음 피해 보상법’도 통과시켰다. 한해 30여만 명의 시민들이 특별한 소송 없이도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민군통합 국제공항 건설에 대한 화성시민들의 찬성 여론 또한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5월 수원을 방문해 수원군공항 이전과 관련해 "중앙정부가 대폭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6·1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재준 수원특례시장, 정명근 화성시장 모두 국제공항 건설을 전제로 화성시 화옹지구 이전에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만큼 관련 입법을 충실히 뒷받침해 임기 중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제헌절 경축사에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하셨다. 어떠한 이유인가.

"지금의 헌법 틀이 갖춰진 게 어느덧 35년이 지났다. 시대에 맞게 헌법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등 국민적 열망을 수용해 나라의 근본 틀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개헌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개헌 작업은 용두사미에 그쳤다고 본다. 의장임기 동안 여야 정치권은 물론 학계, 전문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모아 사회적 합의로 반드시 개헌을 완성하고자 한다."
 

-국회의장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국회의장이 되고자 하는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확실하게 작동하는 국회, 불도저식 국정운영을 막아내는 국회,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국회를 운영하고 싶다.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예산 심의·의결권을 실질적으로 대폭 강화하겠다. 이를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민생 국회,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국민의 국회를 만들고 싶다. 국회 중심으로 한 공공외교를 강화하겠다. 정부 외교를 보완하고 국격에 맞는 의회외교를 적극 추진하고 싶다. 단순한 방문 교류가 아니라 기후, 환경, 에너지, 평화 등 국내외적 현안에 대해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외교를 펼치겠다."

-경제가 굉장히 어렵다. 향후 전망도 불투명한데 경제전문가로서 향후 위기 극복 방안은.

"우리나라는 여러 경제위기를 겪었다. 1973년 에너지위기, 1997년 외환위기가 있었다. 2003년 북핵위기가 있던 노무현 정부 때 경제부총리였던 제가 ‘7중고’라고 표현할 정도로 위기가 겹쳐 왔었다. 그리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저력이 생겼고, 관료들 또한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많은 복합위기를 극복한 경험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 통합’이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가 필요하다. 지금은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다. 경제가 복합위기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가장 훌륭하게 잘한 사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금융위기 대응이다. 세계를 감동시키고 국민 전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모티브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 수 있다. 위기 극복할 수 있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잘할 능력과 역량이 갖춰져 있다. 이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야 하는데, 서로 갈라져서 싸우면 안 된다. 국회에서 협치를 강조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력의 정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 국회의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각종 현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작금의 상황에서 국회의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라 보는가.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의장의 자리는 삼권분립이라고 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국회가 통법부, 거수기로 전락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기 어렵다. 이번 국회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고 시의적절한 입법은 물론, 예산안 편성·의결과정에 충실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최소 70~80%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법안과 예산안, 민생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8·28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간 신경전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당부의 말씀을 남기신다면.

"국회의장이 되면서 당적이 없어졌기 때문에 전당대회에 대해 참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조직이든 처음에는 친목단체나 공부모임으로 순수하게 출발했다가 점점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소위 ‘계파’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고,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과오를 자주 범한다.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듣고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으면 정책이 한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또 침묵하는 국민, 좌우 어느 쪽에도 편중되길 싫어하는 중도층 국민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명분보다는 나와 내 가정의 안정이라는 실리적인 측면이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느 정당은 물론이고 어느 계파, 어느 사조직이든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여야의 원구성 협상 지연 등으로 의장 선출 과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재발방지를 위한 국회 차원의 조치가 있다면.

"현행 국회법에 ‘전반기 국회는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임시회를 의원의 임기 개시 후 7일에 집회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후반기 의장에 대한 선출 시한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입법 불비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의장 선출을 못 하면 국회는 완전히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나라에 비상한 상황이 생겨도 국회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 실제로 민생 관련 법안 처리가 뒤로 미뤄지고 각 부처 장관 등 인사청문회도 파행을 겪었으니 인사 검증을 제대로 못 한 책임은 결국 여야 국회의원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막으려면 국회법을 개정해 후반기 국회도 정확히 언제 열어야 한다는 강제조항을 두고, 정부에 대한 견제와 입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야가 검찰개혁 관련 현안으로 매번 부딪힌다. 조율을 이끌기 위한 복안이 있다면.

"저는 지난 2011년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 시절부터 검찰 개혁에 앞장섰다. 검찰개혁은 검찰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씻고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게 해 공정사회를 만드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국회 본회의 통과가 필요한 법률안 개정안 대신 국무회의를 통해 시행령만 고치는 등의 꼼수로 국회를 패싱 하고자 한다면 정부시행령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삼권분립의 취지 아래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검찰에 대한 개혁 논의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검찰개혁 중재안으로 당초 여야가 합의했지만, 여당이 곧바로 뒤집었다. 이때부터 여야의 신뢰가 무너졌고, 법안통과를 놓고 신경전이 이어졌으며 법사위원장 임명을 놓고 긴 시간 동안 평행선을 달렸던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여야 합의를 손바닥 뒤집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화 광해의 대사에 나오듯 ‘정치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여야에 쟁점이 발생할 시 단순히 알아서 합의해오라고 시키지 않고, 양방이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율을 하겠다."

김재득·라다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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