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6일에 터진, 대통령 윤석열의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 메시지 사건은 윤석열 정권이 그간 저질러 온 자해(自害)의 백미였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리석고 미련했던 이 사건의 결과에 대해 여론은 윤석열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묻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8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2.9%가 여권의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윤석열을 지목했다. 권성동 및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꼽은 응답은 19.4%, 당 대표 이준석을 지목한 응답은 18.6%였다.

그러나 보수층이나 국민의힘 지지층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그들은 이준석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봤다. 보수층 응답자는 이준석 34.4%, 윤석열 30.9%, 권성동 및 윤핵관 23.9%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이준석 43.9%, 권성동 및 윤핵관 27.2%. 윤석열 15.3%였다.

여론조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관되게 나타나는 건 책임을 묻는 일에 있어서 여권 지지층과 야권 지지층 사이에 나타나는 큰 차이다. 여권 지지층은 이준석에게, 야권 지지층은 윤석열에게 가장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쪽 모두 정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일지라도, 여권 지지층은 문제 해결을 더 원하는 반면 야권 지지층은 야권에 유리한 결과를 더 원하기 때문일 게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앞으로 치열한 반(反)윤석열 투쟁을 전개해 나갈 이준석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전반적인 민심이 윤 정권에 등을 돌린 이상 이준석의 윤석열 공격은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겠지만, 그건 윤석열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을 희생으로 한 자해이기 때문이다. 그간 이준석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대구시장 홍준표가 날로 거칠어지는 이준석의 ‘반윤 투쟁’을 가리켜 ‘막장정치’라거나 ‘분탕질’이라는 말로 비판하고 나선 것도 바로 그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평소 이준석을 어떻게 보았느냐는 시각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준석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찬반 중간에 위치해 있는 나는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2015)’라는 책의 저자로서 평소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간절히 원했기에 이준석의 등장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나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면서 적잖은 애정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의 과도한 자기중심주의가 그의 재능을 망가뜨리거나 무의미하게 만들 거라는 생각도 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준석이 국민의힘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준석은 ‘크게 이길 대선을 질 뻔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대선 막바지에 표를 깎아먹을 일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보아야 할 것은 이준석이 국민의힘의 ‘늙은 꼰대, 보수꼴통’ 냄새와 이미지를 바꿔준 ‘분위기·이미지의 전환 효과’다. 나는 전자의 실(失)보다는 후자의 득(得)이 훨씬 더 컸다고 본다. 그는 국민의힘과 극우를 분리시키면서 호남을 껴안는 노선을 공격적으로 펼침으로써 국민의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유권자들로 하여금 국민의힘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준석은 말을 탁월하게 잘 한다. 말 기술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콘텐츠도 뛰어나다.

그런데 이준석의 그런 큰 장점을 압도하고도 남을 결함이 하나 있으니, 그건 이준석이 엄청난 다변가이자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자라는 사실이다. 말싸움을 치열하게 하는 건 좋은데, 그는 멈추는 법을 모른다. 보는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임계점을 꼭 돌파하고야 만다. 구경하는 나마저 두 손 들고 말았다. ‘나는 한번 아니면 죽어도 아니다’는 꼰대스러운 고집도 그런 자기중심주의의 산물일 게다.

이준석은 지난해 3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이 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어떡할 거냐고 하더라. (그렇게 되면) 지구를 떠야지"라고 말했다. 이는 농담을 빙자한 ‘망언’급 실언임에도 이준석에게 별 타격을 입히지 않았다. 이준석은 젊은 나이 때문에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걸 압도하고도 남는 이익이나 혜택을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 문법과 평판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젊음의 특권’을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젊음의 특권’이 성공으로 갈 것 같진 않다. 그는 승리보다는 자기 성질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윤핵관과의 전쟁만 해도 그렇다. 그는 지난해 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에게 "윤핵관은 바로 윤석열 후보 본인"이라고 실토했다.(7월 28일자 칼럼) 그는 여태까지 사실상 윤석열과의 전쟁을 벌여온 셈이다. 왜 그렇게 실속없는 싸움에 매달렸던 걸까?

대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이준석이 벌인 제1차 잠적 사태(2021년 11월 29일~12월 3일)와 사실상의 제2차 잠적 사태(2021년 12월 21일~2022월 1월 6일)를 상기해보라. 그건 노골적인 ‘치킨 게임’이었다. ‘치킨 게임’은 잃을 게 더 많은 사람이 지기 마련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윤석열이 사실상 굴복했고, 그때 그는 이준석과는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는 관계라는 결론을 내렸을 게다.

이준석은 국민의힘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앞서 말한 이준석의 장점들이 ‘축복’이라면, 이준석의 자기중심적 비타협주의는 ‘저주’였다. 이 비타협주의는 디지털 이진법 논리를 갖고 있다. 예컨대, 이준석이 한국 페미니즘의 한계와 문제를 점잖게 지적하면서 젊은 남성과 페미니즘의 화해를 주선하는 미래지향적인 일도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진격하다가 반(反)페미의 선봉에 서고 말았다. 이는 두고두고 국민의힘에게도 부담이 되겠지만, 더욱 중요한 건 통합이라는 비전의 결여다.

이준석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답은 있었을까? 나는 애초부터 그런 답은 없었다고 본다. 그는 정치를 ‘치킨 게임’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민의힘을 살렸다 죽이는 이준석의 원맨쇼를 구경하고 있는 셈이지만, 윤 정권의 몰락이 현실화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이준석은 자신의 미래를 희생으로 한 복수혈전의 승자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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