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인 639년 해호스님 의해 창건돼
큰 법당 낙가보전엔 천수관음 모셔져 있고
일반인들 못 들어가는 천중선원 들어서면
수락산·도봉산·의정부시까지 한눈에 담겨

망월사 천중선원
망월사 천중선원

‘망월사역’이라는 멋진 이름을 발견한 것은 1980년대 수원에서 서울로 전철로 통학하던 대학시절이었다. 서울을 북쪽으로 금방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의정부였지만 한강을 넘어 아득히 멀리 있는 곳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망월! 망월(望月)이 주는 넉넉함은 어린시절 정월 대보름날, 달 밝은 밤에 깡통에 불을 담아 ‘망월이야’를 외치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입꼬리 올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푸근한 이름의 망월사는 망월사역으로 하여 더욱 가보고 싶은 사찰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서울 사람들에게 망월사의 인기가 많아서 1929년 가을 조선일보 양주지국의 ‘망월사 탐승대회’는 백 수십 명이 참가할 정도였다. 이에 도봉산 아래 호원동·장암동 주민들과 의정부번영회 상인들은 가을처 도봉산 탐승객과 통학생들을 위해 임시 정거장 설치를 요구했다. 망월사 주지 김용담(金龍潭, 김송월)과 약수암 정석암(鄭石菴) 및 지역유지들의 노력으로 철도국에서 1931년 9월 8일 시운전을 하면서 용산에서 21km 지점인 망월사 입구 장수원에 임시 정거장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망월사역이 시작되었다.

망월사 영산전
망월사 영산전

도봉산은 서울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시, 의정부시에 걸쳐 있는 740m 높이의 큰 산이다. 커다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절벽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은 옛부터 유명해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렸다. 도봉산이 명산이었던 만큼 사찰 또한 많았다. 조선 전기 『동국여지지』에는 청룡사·망월사·회룡사·원통사가 언급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국사가 추가되었다. 지금 도봉산에는 20개에 이르는 사찰이 있으니 불국토가 아닐 수 없다.

‘망월사’라는 이름의 사찰은 전국 도처에 있다. 충청도 부여 망월산 망월사, 경상도 경산 동학산(動鶴山) 망월사, 전라도 고부 도순산(都順山) 망월사, 전라도 순창 서룡산(瑞龍山) 망월사, 황해도 평산 모란산(牡丹山) 망월사, 경기 금천 삼성산(三聖山) 망월사, 경기 광주 남한산성 망월사도 있다. 그럼에도 도봉산 망월사가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영산전에서 바라본 세상
영산전에서 바라본 세상

◇도봉산 가을 경치 금강산보다 나아

무명자(無名子) 윤기(尹기 1741~1826)의 ‘무명자집’에 ‘산을 유람하며 도봉산의 가을 경치가 금강산보다 낫다’는 시를 지었다.

세상에선 말하지 금강산 경치(世稱金剛山), 우리나라 제일의 승경이라고(奇賞冠東方)

허나 가을 도봉산의 아름다움이(道峯秋色多), 아무래도 금강산을 앞선다 하리(反復勝金剛)

나는야 이곳에 살면서(我欲棲此中), 독서하며 진리를 찾고 싶네(讀書以求道)

따지고 보면 아름다운 도봉산에서 독서하며 진리는 찾는 이는 선승들이라 할 수 있으니, 무명자의 부러움이 되겠다. 도봉산 망월사 가는 계곡은 금강산 만폭동에 버금가는 눈맛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옛날 스님이 이곳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금강산인 줄 착각하여 보덕굴(普德窟)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였다.

"우뚝우뚝한 봉우리들과 여기저기 벌려있는 노송들, 기암과 때로 피어오르는 운무는 도봉의 절경일뿐 아니라 경산에서 이만한 곳이 없다. 또한 승가사·삼막사·대성암도 시야가 넓으나 망월사처럼 수려하지 못하고, 진관사·봉은사도 아늑은 하나 이처럼 그윽한 아름다움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68)의 망월사 예찬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가을 ‘도봉산 단풍’은 이름이 높아 조선시대 이래 일제강점기에도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탐승객의 유치와 편의를 위해 1934년 ‘도봉산 망월사지(道峯山望月寺誌)’가 발간될 정도였다. 망월사 주지 김송월(金松月, 용담)이 안진호(安震湖)에게 부탁해 편찬한 38쪽 분량의 소책자였지만 내용은 알차다. 지금보다 역사의식이 나았던 사람들의 얘기다.

망월사 혜거탑.
망월사 혜거탑.

◇망월사의 보물들

망월사는 도봉산 자락에 자리잡아 주위 풍광이 수려한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남양주시 봉선사의 말사이다. 삼국시대인 639년(선덕여왕 8)에 해호(海浩)가 신라 왕실을 위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망월사는 경기도 전통사찰 제8로 지정된 의정부시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이다. 대개의 산사들이 차 다니는 길이 있는 것에 비해 망월사는 계곡을 걸어 올라와야 하니 늘 건강하다. ‘아니오신 듯, 다녀가시옵소서’라는 팻말은 망월사를 찾는 이들에게 주는 잠언이지만, 좁은 터전에 수직으로 높이 올린 건축물들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1960년대 이전의 고즈넉한 산사의 맛은 높이 올린 건물들로 균형감을 잃은 듯한 첫인상이다. 이런 불편함은 천중선원을 보고서야 누그러질 수 있다.

해탈문에 들어서면 망월사 경내가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관음전, 지장전과 고불원, 칠성각 영역과 왼쪽으로 영산전, 천봉당 탑비, 혜거국사비 영역으로 나뉜다. 망월사 큰 법당은 ‘관음전’인데, 지금은 ‘낙가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겉에선 2층 구조지만 안에서 보면 높다.

망월사 현판.
망월사 현판.

원세개가 쓴 망월사 현판(1891)은 1층의 전각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지장전에 해당하는 무위당(無爲堂) 편액 뒤에 걸려 있는 ‘망월사’ 현판은 청말 정치가인 위안스카이(袁世凱)가 1891년(고종 28) 가을에 쓴 글씨다.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천중선원이 망월사의 가장 좋은 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망월사가 선수행 수좌들을 위한 사찰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영산전에 서면 비로소 망월사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천중선원과 사찰 전경을 볼 수 있으며 멀리 수락산과 의정부 시내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더욱이 포대능선의 자운봉, 만장봉 등을 배경으로 한 도봉산의 웅장함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의 목조 삼존불과 16나한상이 모셔져 조선후기 전통을 계승하고 있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영산전을 지나면 혜거국사(慧炬國師)를 기리는 팔각원당형 혜거국사 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2호)를 만날 수 있다. 망월사 계곡을 굽어보는 명당이다. 혜거국사는 고려 초기 송나라에 유학한 승려로 구산선문 가운데 사자산문의 도윤(道允)-절중(折中)-신정(神靖)의 뒤를 이은 인물이니, 또 다른 혜거(惠居)국사와는 다른 인물이다.

◇한국근대 선불교의 중심, 망월사

한국 근대불교사에서 망월사는 또 다른 중심이었다. 원래 망월사는 이름있는 승려들의 주석으로 빛났다. 고려시대 혜거국사와 나옹선사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천봉, 영월, 도암스님이 주석하였다. 이들 세 스님의 영정이 일제강점기까지 봉안되어 있었다. 근대에는 용성, 만공, 한암, 전강, 금오, 춘성 스님 등 선사들이 머물며 후학들을 제접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용성스님의 근거지였고, 만해스님의 상좌였던 춘성스님이 주지로 머물던 사찰이다. 한강 이북에서 수좌들이 가장 가고 싶은 선방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개교사장 대선사 백용성 초상-  귀원정종(1914)

백용성(白龍城, 1863~1940)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만해 한용운과 더불어 불교계를 대표했던 독립운동가이자, 불교개혁가로서 불교근대화와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망월사는 용성 스님의 불교대중화와 불교개혁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다. 오랜 산중 수행을 마친 용성스님은 1905년 11월 서울과 가까운 망월사에 주석하며 도회지 포교의 대중불교를 꿈꾸었던 곳이다. 또한 용성스님은 1920년부터 1927년까지 망월사 선원의 종주로 선풍을 진작시켰고, 1925년에는 만일(萬日)참선결사를 하며 선불교의 중흥을 위해 노력했던 곳이다. 용성에게 도봉산 망월사는 서울 대각사와 더불어 불교진흥을 위한 교두보였던 셈이다. 용성스님을 종주로 모신 것은 당시 망월사 중흥을 이끈 김용담 스님이다. 해방 후 혁신불교를 주장하다 월북했다. ‘망월사지’를 편찬한 인물로 망월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춘성스님
춘성스님

이춘성(李春城, 1891~1977)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3.1운동으로 서대문 감옥에 수감된 3년 동안 망월사에 머물며 옥바라지를 했다. 하동산 스님과 함께 냉방에서 치열한 정진을 이곳에서 했다. 6.25전쟁 때도 망월사를 떠나지 않았던 춘성스님은 ‘도봉산 호랑이’로 망월사를 지켰다. 막행막식과 육두문자로 걸림없는 자유자재의 삶을 살았던 춘성스님으로 하여 망월사 선방은 선승들이 찾는 수행도량으로 이름 높았다. 그때가 가장 망월사다웠던 때이기도 하고, 지금이 바로 망월사의 진면목을 볼 때이기도 하다.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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