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걸음이 보기엔 느린 것 같지만 꾸준한 모습이 믿음직스럽다는 뜻의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천천히 나아가는 황소걸음처럼 일이 더딜지라도 인내하며 노력하다 보면 성공에 이른다는 말이 꼭 어울리는 부부가 있다.
한몸이고 한마음이라고 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옛말처럼 서로의 손을 맞잡은 지웅길·황순자 민주농장 대표는 1992년부터 30년 가까이 제2의 고향 여주시 흥천면에서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11월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의 ‘이달의 새농민’으로 선정된 지대표(59)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2의 고향에서 다시 시작한 ‘선녀와 나무꾼’ 부부의 인생 2막="농사나 지어볼까 하는 생각에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우리 열심히 살자고 둘이 손잡고 다짐했죠."
여주시가 고향인 지웅길 대표는 결혼 초 아내와 함께 지역으로 돌아왔다. 두 부부는 결혼한 지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됐다.
두 사람은 새로운 시작에 앞서 훌쩍 여행을 떠났던 용문사에서 더 열심히 살아보자고 약속했다. 이들 부부는 그 약속이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했다.
황순자 대표는 "땅도 없이 맨손으로 내려왔다. 그때 지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남편의 성실함만 보고 임대차를 많이 주신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내가 아이를 돌보면서 소를 키우겠다고 했고, 남편은 건축 현장에 나가 돈을 벌어왔다. 소 5마리로 시작해 열심히 쉬지 않고 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웅길 대표도 "하루하루 나가서 번 돈으로 밤이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둘이서 그 좁은 공간을 소 키우는 외양간으로 만들었다"면서 "둘이 열심히 살아서 남들에게 표본이 되는 삶을 살아보자고 한 약속을 늘 가슴속에 새겼다"고 했다.
5마리로 시작해 38마리까지 점차 축사를 채워간 부부는 지난 30년을 회상하면서 하루도 쉼없이 일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황 대표는 "아이들이 어릴 적 그린 그림을 보면 엄마, 아빠가 농사짓느라 장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면서 ‘엄마, 아빠는 선녀와 나무꾼 같아’라고 이야기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축사 지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최종 목표는 전국 1등 소 만드는 것=현재 한우 140마리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민주농장은 축산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을 때 비로소 완성했다.
지 대표는 "땅을 구입해서 차츰차츰 지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한해 한해 손수 짓다 보니 이곳으로 옮겼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곁에 앉은 황 대표의 얼굴에도 미소가 띄었다.
두 대표는 열심히 노력해서 키운 만큼 자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인근은 물론 다른 지역 농가에서도 농장 운영 방법을 보러 꾸준히 찾아온다는 설명이다.
꿈에 대한 질문에 지웅길 대표는 두 가지 답을 내놨다. 한 가지는 돈 많이 벌어서 함께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자고 했던 젊은 시절 아내와의 약속이고, 다른 한 가지는 축산업 종사자로서의 포부였다.
그는 "그동안 소 키우는데 모든 정성을 쏟았다. 축산업 종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일 텐데 전국에서 1등 가는 소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소는 내게 있어 자식과 같은 의미=지웅길 대표에게 ‘소’에 대한 의미를 묻자 단번에 애지중지 키운 자식과 같다고 답했다.
지 대표와 그의 아내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담담해졌지만 처음에는 소를 보낼 때 많이 울었다"면서 "소가 먹는 것부터 자는 자리까지 늘 깔끔하게 정리했고 자식 같은 마음으로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 도중 밥시간에 맞춰 소가 울자 농장으로 달려가는 지 대표의 모습을 보니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달의 새농민’ 수상 당일 찍은 기념사진을 꺼내보인 황 대표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두 부부는 "지역에서 우리보다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아 상을 받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새기고 노력하겠다"고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