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일할 때, 관사 인근에 걷기 좋게 다듬어진 공릉 천변 산책길이 있었습니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 날 저녁,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지요. 유난히 맹꽁이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공릉 천변을 한 바퀴 돌고 시민농장을 지날 때였지요. 아이들이 도랑에 들어가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뭔 일인가 물었더니 오리를 잡는다는 것이었지요. 맹꽁이 소리가 오리우는 소리로 들렸던 모양입니다.

"얘들아! 오리가 아니고 맹꽁이야! 괜히 고생하지 말고 나와라." "아저씨는 무슨 맹꽁이라 그러세요. 오리가 맞아요." 아이들이 한심하다는 듯 저에게 말하더군요. 아이들은 오리라는 확신을 가진듯했습니다. 맹꽁이 자체를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니래도…." "여보! 왜 그래요. 애들같이…" 아내에게 면박당하고 돌아서며 자책했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될 걸, 왜 맹꽁이 같이 참견 했니 이 바보야!…’

아주 모처럼 맹꽁이소리를 들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애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맹꽁이 같은 짓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맹꽁이는 느리고 굼떠서 행동이 느리거나 눈치 없는 사람을 놀리거나 핀잔을 줄 때 인용되곤 하지요. 사실 맹꽁이를 보면 움직이는 것도 느리고 뒤뚱뒤뚱하는 모양새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생긴 모습도 다소 징그러워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요.

고향마을 너른 고을(廣州)에는 맹꽁이가 많았습니다. 맹꽁이들이 목 터져라 외쳐대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지요. 방송국 일기예보보다 더 정확했습니다. 비 오시는 날, 맹꽁이들이 소리 높여 울어대면 가뜩이나 우중충한 마음이 더욱 심란해지곤 했지요. 요즘엔 농약사용으로 생태환경이 악화되었기 때문인지 맹꽁이를 만나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맹꽁이가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는 게 이런 이유일 테지요.

사람들도 영악해져서 맹꽁이 같이 어수룩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은 가끔 맹꽁이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죽어라고 일만해서 공직자로는 성공한 편이지만 집안에서 빵점짜리 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를 자책하고 때로 회한에 빠져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아직도 맹꽁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때론 모자란 듯해야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어릴 때, 즐겨보던 '맹꽁이서당' 이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간결한 그림으로 조선시대 학동들을 가르치는 서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만화지요. 맹꽁이 서당에는 사고뭉치도 있지만 잔꾀 많은 학동도 등장합니다. 그들이 벌이는 장난질은 황당할 때도 있지만 제법 그럴듯한 기지(奇智)와 풍자와 유머가 번뜩이지요. 때론 배꼽이 빠질 만큼 재미와 해학이 담겨있어 배울 게 참 많았다는 생각입니다.

맹꽁이 서당에는 다소 모자란 일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풍자와 해학, 그리고 역사의식과 철학이 담겨있지요. 맹꽁이서당 학동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나름대로의 삶을 통해 세상일을 해학적으로 풀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데 있습니다. 오랜 세월 공직자로 살면서 빠른 판단력과 뛰어난 순발력으로 빛나는 공직자를 많이 만났지요. 그러나 자신이 우월하다는 자신감이 앞서 설치다가 빛을 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맹꽁이처럼 둔박(鈍朴)하지만 세상환경이 바뀌어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 잘된다는 걸 알았지요. 우직함이 총명함을 이긴다는 방증입니다. 이솝의 동화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와 궤(軌)를 같이 하지요. 가끔 맹꽁이 같은 제 행동도 그러할 것이라 믿고 습니다. 이 또한 ‘맹꽁이 같은 생각’이라고 비아냥을 들을지 모르지만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지요. 그래서 맹꽁이 같은 저 같은 사람도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합니다.

홍승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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