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얀마 출신 결혼이주여성 잉묘떼인 씨. 
미얀마 출신 결혼이주여성 잉묘떼인 씨. 

미얀마 출신 결혼이주여성 잉묘떼인(44·Yin Myo Theint) 씨. 관심도 흥미도 없던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이었다. 20여 년 전, 점수에 맞춰 비인기 과목이던 한국어를 전공하면서였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미얀마 주재 한국 기업에 입사한 그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한국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다 첫째 아이가 막 학교에 입학할 무렵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유창한 한국어 덕분에 생활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홑벌이하는 남편 월급으로는 가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 은행에서 대출 상담사로 근무 중인 잉묘떼인 씨는 방문한 미얀마인들이 원활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낯선 환경에 놓인 동포들을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미얀마로 돌아가면 사회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잉묘떼인 씨. 바람이 차갑던 가을의 끝자락, 그를 만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 언제 한국에 왔나?

"미얀마 양곤 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취직했다. 회사에서는 통역 업무와 사내 미얀마어 교육을 담당했다. 그곳에서 한국인 남자를 만났고 결혼까지 했다. 그러다 큰딸을 한국에서 교육받게 하고 싶어 10년 전 한국행을 결심했다."

- 한국어가 정말 유창하다. 한국어 전공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사실 20년 전에는 미얀마에서 한국어는 큰 인기가 없었다. 비인기 과목 중 하나였다. 외대에 들어가고 싶은데 점수에 맞춰서 들어가려면 한국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선택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잉묘떼인(사진 오른쪽) 씨 대학 졸업사진. 사진=본인제공
잉묘떼인(사진 오른쪽) 씨 대학 졸업사진. 사진=본인제공

-한국어 배우는 게 어렵진 않았나?

"외국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단어를 외워도 2~3일만 지나면 다 잊는다(웃음). 그래도 미얀마에 온 한국인들이 덕분에 즐겁게 공부했다. 코이카라는 단체에서 파견된 한국인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미얀마를 찾은 한국인 선생님들 대다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었다. 또래니까 함께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말도 배울 수 있었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적응은 잘 됐나?

"남편과 함께 왔기 때문에 적응엔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어를 할 줄 아니까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또 한국에 올 당시 둘째를 임신한 상태라 아이들을 돌보느라 향수병에 시달릴 새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성장하고 여유가 생기니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특히 미얀마 명절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더 보고 싶어진다. 최근에는 미얀마에 있는 가족들하고 거의 매일 통화한다"

- 아이들은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나?

"큰딸이 학교에 들어갈 때 걱정을 많이 했다. 미얀마에서 온 지 얼마 안 돼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놀림을 받진 않을까’라는 걱정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교하면 학교생활은 어떤지 매일 물어봤다. 다행히 괴롭힘당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를 많이 도와주셨다. 감사한 마음이다."
 

- 국제결혼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배우자들에게 조언한다면.

"결국 언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한국인 남편이나 아내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또 조급하게 일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 문화를 배우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익혀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마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센터도 많다. 문제가 발생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방문해서 지원을 요청하길 바란다."

미얀마 출신 결혼이주여성 잉묘떼인 씨가 중부일부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채운기자
미얀마 출신 결혼이주여성 잉묘떼인 씨가 중부일부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채운기자

-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현재 은행에서 대출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 미얀마 출신 노동자들이 많다. 그들이 은행 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 은행에서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했나?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했다(웃음). 한국에서는 남편이 혼자 벌어 가계를 꾸리기 어렵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장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신체적으로 버티지 못했다. 너무 힘들고 야근도 많아서 아이들을 돌보는 데 무리가 있었다. 사무직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은행에서 통역사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다."

- 통역 봉사도 틈틈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오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분들이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한국에 오는 외국인은 90일 이내에 출입국 사무소에 들러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통역을 해주고 필요한 서류도 안내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또, 새롭게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내가 일하는 은행의 고객이 될 수 있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잉묘떼인 씨는 지난 2019년 경기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사진=본인제공
잉묘떼인 씨는 지난 2019년 경기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사진=본인제공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있다면 복지시스템이다.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어서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도 받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가 정말 좋다. 특히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노치원(늙을 노(老)와 유치원을 합성한 신조어)’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독립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미얀마로 돌아가 ‘노치원’을 차리고 싶다. 미얀마 사람들도 한국인들이 누리는 복지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이세용기자
사진=임채운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