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똥집 누가 먹었어?"

1970년대, 면서기로 일할 때, 가끔 회식을 하면 두부김치찌개가 최고의 안주였지요. 어느 날, 닭볶음탕이 술안주로 나왔습니다. 어쩌다 먹는 특식이었으니 눈이 번쩍 뜨였지요.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때, 좌장인 계장이 갑자기 "닭똥집을 누가 먹었냐?"고 소리쳤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지요. 제가 먹었다고 했더니 "물어보고 먹어야지, 그걸 날름 먹어버리면 어떻게 하냐?"며 언짢아하더군요. ‘그걸 물어보고 먹어야 하나?’ 살짝 기분 상했는데 선배로부터 "계장이 가장 좋아하는 안주"라는 말을 듣고 나서 ‘아차! 실수했구나!’ 후회했지만 참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계장과 닭볶음탕을 먹을 때 닭똥집은 눈에도 넣지 않았지만, 아무리 조직사회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해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에는 군청에서 병사업무를 맡았습니다. 입대를 앞둔 장정들의 신체검사와 입영관련 업무라 병무청이 있는 수원엘 자주 갔지요. 그런데 그때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출퇴근이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숙소를 정해 머무를 수밖에 없었지요. 매년 몇 차례 사나흘씩 병무청에서 신체검사와 장정들의 명부를 작성, 점검하는 일을 했습니다. 병사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일을 마치면 함께 일한 동료들과 함께 회식을 했지요.

첫 출장 때입니다. 수원역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포장마차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지요. 닭똥집이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문득, 면서기시절, 닭똥집 먹었다고 눈총 받던 회식자리가 떠올랐지요. 알고 보니 그곳뿐 아니라 수원역 부근의 포장마차마다 닭똥집이 지천으로 널려있었습니다. 이렇게 흔한 음식인데 그걸 먹고 면박을 당했다니 헛웃음이 나왔지요. 술안주로 제격인 데다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면서기 시절, ‘닭똥집 사건’도 떠올라 배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그날 이후 병무청 출장을 손꼽아 기다렸고, 수원 출장 때마다 포장마차를 제집처럼 드나들었지요.

살다 보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책을 읽거나 무작정 길을 걷곤 하지요. 저녁 무렵, 어둠이 내리는 시간엔 포장마차에 들러 술 한 잔 기울이는 게 혼자지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그것도 혼자 마시는 ‘혼 술’은, 포장마차가 더 할 나위 없이 제격이지요. 식당에서의 혼 술은 처량해 보일 수도 있는데다가 주인도 반가워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포장마차는 환경이나 먹을거리가 다양한 편은 아니지만 식당분위기를 뛰어넘는 색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어둠이 짙어질수록 깊이 스며드는 달빛을 등에 지고, 더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은 세상최고입니다. 특히, 눈 내리는 날, 어둠을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 그윽한 포장마차에서 기울이는 술 한 잔은 세상 부러울 게 없는 행복, 그 자체지요. 일상의 고락을 술잔에 담아 뜨거운 눈물 한 방울 섞어 마시는 시간, ‘혼 술의 맛’을 아는 이라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입니다. 어둠이 스며들 무렵, 백열등이 밝아지면 붉어진 볼 위로 달빛이 은은하게 젖어들곤 하지요.

비워도 비워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술잔처럼 허허한 삶의 굴레가 돌고 또 돌아갑니다. 그 허허한 마음으로 포장마차에 들어 술 한 잔 기울이면 찌든 삶의 더께가 말끔히 씻겨 내리지요. 가슴 저린 한구석, 마음의 상처가 위로받는 시간입니다. 그런 연유로 가끔 혼 술을 만나고 때로 낮술을 기울일 때도 있지요. 요즘엔 혼 술이나 혼 밥할 수 있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전혀 낯설지 않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요. 마음이 허허할 때 깊이 들이키는 술 한 잔, 비록 쓰디쓸지라도 그것마저 내 것이 되고 다시 살맛나는 살가운 세상을 만나곤 합니다.

홍승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