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1997년 말 국가 부도를 맞은 대한민국. 거리는 집과 직장을 잃은 실직자들로 넘쳐났다. '한강의 기적'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짙은 열패감만이 세상을 뒤덮었다. 그 참담함 속에서도 꿋꿋이 버틸수 있었던 건 우리 삶 곳곳에서 이웃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신 귀화인 김하종(66) 신부. 그는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에겐 밥을 내주고 집을 나온 청소년에겐 안식처가 돼 주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에 온 지도 어느새 33년. 그동안 세상도, 사람도 많이 변했다. 연말이 다가오는 겨울날, 그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을 찾았다. 


- 한국에 온 이유는 뭔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 문화에 매력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한국에 오고 싶었던 건 故 김대건 신부를 알게 되면서다.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나를 한국으로 이끌었다."

 

- 1990년 한국에 왔다.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당시에만 해도 ‘우리’라는 문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가정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나는 개인주의가 강한 유럽에서 왔기 때문에 ‘나’ 보다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좋았다. 그런데 33년이 흐른 지금 ‘우리’라는 문화가 사라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지만 지켜냈어야 할 문화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사람들은 희생보다는 ‘나’의 개인적 성취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 성남에서 30년째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소속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의 목표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처음 올 당시 성남은 지금의 성남이 아니었다. 분당 신도시도 생기기 전이다.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사는 지역 중 하나였다. 나보다 먼저 한국에 와 있었던 다른 신부님이 성남에 어려운 분들이 많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성남에 왔고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 1998년, ‘안나의 집’을 설립했다. 그 이유는?

"1997년 말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IMF 사태를 맞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노숙인과 부랑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독거노인들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당시 성남 모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오 마태오(세레명) 사장님의 제안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를 만든 것이 올해로 25년째 운영 중인 '안나의 집'이다."

 

- 오 마태오 사장님에 대한 감정이 각별할 것 같다.

"맞다. 오 마태오 사장님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제안한 것이 아니다. 그도 식당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평범한 시민 중 한 명이었다. 풍족하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줬다는 것에 큰 감동을 느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나중에 성공하면, 나중에 부자가 되면 기부하겠다'라는 말이다. 항상 조건을 단다. 그런데 오 마태오 사장님은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며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처음 무료 급식소를 찾는 이들의 수는 하루 평균 80명 정도였다. 지금은 500명 정도가 '나의 집'을 찾는다. 오 마태오 사장님이 심은 작은 씨앗이 아름다운 나무로 성장했다."

- 무료 급식 배식 시간을 보니 저녁에 하더라.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뿐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운영 중인 무료 급식소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 급식소가 점심에 운영이 된다. 노숙인들 입장에서 보면 점심은 비교적 해결하기 쉬운데 저녁이 문제다. 노숙인이라고 해서 저녁엔 굶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들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싶어 저녁 배식을 시작했다."

 

- 일반 노숙인뿐 아니라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도 많이 하고 있다.

"2015년부터 가정 밖 청소년들을 돕는 '아지트(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의 준말)'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매우 예민하고 민감하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가 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거리로 나가 청소년들과 만나고 있다. ’아지트‘는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지트‘에서 상담도 받고, 게임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다. 심지어 병원과 연계한 의료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아지트'에 방문해 받을 수 있다."

 

-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는 노숙인을 보면서 '알콜중독자다', '게으른 사람들이다'라면서 손가락질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숙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아서 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아이들은 미래에도 거리를 배회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주는 이유다."

 

- 노숙인들을 무작정 돕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이다. '안나의 집'에서 진행하는 활동은 그저 밥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최종 목표는 이들이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돌아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안나의 집'은 노숙인들을 위해 쉼터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3년 정도 쉼터에 머물면서 우리가 설립한 공장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퇴소할 때쯤 되면 적지 않은 목돈을 가지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좋은 일이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회의감이 들 때는 없었나?

"왜 없겠나. 가끔 노숙인들과 싸운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안나의 집’을 찾는다. 그래서 규칙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끔 몇몇 사람들이 그 규칙을 어기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 큰소리로 야단치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제지할 때도 있다. 그들에게 밥을 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밥을 주고 싶어서다. 그런데 나와 마찰이 있었던 이들이 '김하종 신부가 나에게만 밥을 안 준다'고 시청이나 경찰서, 노동부에 민원을 넣기도 하더라. '나는 선의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뿐이다. 우리를 찾는 모든 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 개인의 삶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탈리아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진 않나? 김 신부도 외로움을 느끼나?

"물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다. 또 가정도 없으니까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탈리아에 연로한 어머니가 계신다. 자주 만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거의 매일 영상 통화를 하면서 그리움을 달랜다. 한편으론 우리 형제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장남인 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형제들이 어머니를 살뜰히 살피고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된다."

- 최근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라는 책을 냈다.

"사실 이 책은 후원을 받기 위해 만든 책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후원 규모가 작아졌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구매해 수익이 많이 났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서 나오는 수익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 이 책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봉사자의 태도다. 우리는 간혹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미명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깔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 나는 이 책에서 봉사자가 지켜야 할 3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첫 번째 요소는 '환영(Accogliere)'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찾는 모든 이들을 따뜻한 미소로 맞아야 한다. 누구나 다 노숙인일 될 수 있다. 내 친구,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대해야 한다. 두 번째 요소는 '경청(Ascoltare)'이다. 도움의 대상자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그리고 공감하며 들어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세 번째 요소는 '사랑(Amare) 나눔의 방법'이다. 요청하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은 봉사가 아닌 적선이다. 도움을 요청할 때, 그리고 요청한 것만 나누면 된다."

 

- 곧 새해가 밝는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나'부터 '우리'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주길 기대하기보다 내가 이 순간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부터 찾아야 한다. 2024년 새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길 바란다."

이세용기자 / 사진=김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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