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점과 선, 원과 사각형 등 단순한 형태를 강조하는 회화인 기하학적 추상미술. 서구에서는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의 작업을 통해 각광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장식적인 미술 혹은 한국적이지는 않은 추상이란 평가 속에 단색화와 같은 다른 추상미술에 비해 소외돼왔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기하학적 추상은 1920-1930년대 근대기에 등장해, 1960-19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며 각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오는 5월 19일까지 열리는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우리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재조명한다.

특히 건축과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의 접점을 형성하며,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전 등 한국 사회 변화의 변곡점들을 함께 했던 역사를 작가 47인의 작품 150여 점을 통해 되짚어 본다.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시대별 주요 양상에 따라 5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기하하적 추상미술이 미술을 넘어 디자인의 영역까지 확장됐던 1920-1930년대로 시작된다.

경성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영화 주보 ‘단성 주보’, 혁신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제일선’ 잡지 표지 등 단순하지만 세련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엿볼 수 있다.

미츠코시 백화점 내외부의 기하학적 외형을 담은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쓴 시인 이상이 디자인 한 시집 및 잡지 표지들도 출품돼 눈길을 끈다.

이어 한국 최초로 결성된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인 ‘신조형파’의 활동상과 작품들을 살핀다. 이들은 미술품을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이익을 창출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김충선의 ‘무제’를 비롯해 변영원, 변희천, 이상욱, 조병현 등 비교적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기하학적 추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신조형파의 일원이었던 건축가 이상순이 직접 촬영한 ‘신조형파전’ 작품 및 전시장 사진을 통해 당시를 재구성해볼 수 있다.

한국적 미술의 주요 소재인 자연과 현대미술의 양식인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연계하기 위한 시도들도 이어졌다.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을 담은 작품들로, 유영국의 ‘산’, 전성우의 ‘색동만다라’가 대표적이다.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서구에서는 많지 않지만, 한국 작가들은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것에서부터 추상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서구적 미술과 한국의 전통 자연 등을 결합한 한국적 추상미술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등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경. 사진=정경아 기자

전시의 4부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는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더욱 전방위적으로 확대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을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오랜만에 재공개되거나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명영, 문복철이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했던 작품과 더불어 이승조의 ‘제4회 오리진’ 전 출품작 ‘핵 G-999’(1970)도 53년 만에 재공개된다.

또한, 윤형근의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 ‘69-E8’(1969)은 최초 공개로 유족이 작가의 작업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그동안 너무 장식적이거나 서구적이란 이유로 평가 절하됐던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지닌 독자성을 보여 주고, 숨은 의미를 복원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정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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