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전날인 지난해 1월 20일 50대 A씨는 수원시 영통구 자택에서 아내 B씨와 말다툼하다 화가 나 폭행을 저질렀다. 고향에 가는 동안 반려동물을 어떻게 돌볼 지 다투다가 폭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명절 연휴인 지난 2020년 1월 26일 20대 아들 C씨가 광주시 한 아파트에서 부친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보일러 온도를 높이려 했는데 "옷을 입어라"는 부친의 말에 화가 났다는 황당한 이유에서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이는 명절이 화합의 장이 아닌 가정폭력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 기간 일평균 가정폭력 112신고 건수는 2019년 211.8건을 시작으로 2020년 206.3건, 2021년 203.5건, 2022년 193건 순으로 감소하다가 지난해에는 215.5건으로 다시 200건대로 늘어났다. 이는 평상시보다 적게는 34%, 많게는 45% 높은 수준이다.

경기북부 또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설 연휴 동안의 가정폭력 신고가 평소에 비해 30% 정도 많았다.

대면 접촉을 최소화했던 코로나19 당시와 비교해 최근에는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만남의 기회가 늘고 있다. 대면 모임 증가와 범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가족 간 접촉이 증가한 만큼 가정폭력의 불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취약계층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한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른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사이의 소통 부재가 가정폭력을 부채질할 위험도 크다.

에듀윌이 지난해 추석 20~40대 성인 남녀 1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명절 연휴 갈등을 일으키는 대화 소재’로 응답자의 42.1%가 ‘연봉·회사 규모 등 취업’을 골랐다. 대학 입시나 결혼 시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식 경기대 경찰행정학전공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수록 가족들끼리 서로 은연 중에 아픈 곳을 찌르는 등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어느 가정에서나 부부싸움과 자식들 간의 유산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고 명절이면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이라며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면 폭행으로 발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특히 수직적인 고부 관계로 인한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진 만큼 명절 음식을 간소화하는 등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며 "추수감사절 때 각자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미국의 문화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8일까지 관내 가정폭력 재발 위험 가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가정폭력에 처할 시 365일 24시간 상담이 가능한 ‘1366’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긴급 상황 시에는 상담을 지원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피해자를 보호 시설에 인계하고 있다.

노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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