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을 걷기 위해 두 번째 방문한 해남의 날씨는 지난번과 같이 좋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에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해남종합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순간 "아! 해남과는 인연이 아닌가? 왜 자꾸 비가 올까?"라는 생각을 하며 터미널 시간표를 바라봤다. 2코스의 출발점인 송지면사무소까지 가는 버스도 몇 분 전에 출발한 상황이었다.
한기를 쫓아 준 따뜻한 음식
40여분 가량 시간이 남아 있기에 모바일 어플로 주변에 김밥집이 있는지 찾아봤다. 이날 2코스와 3코스를 동시에 걸을 계획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구간에는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김밥이라도 2줄 사러 가서 출출할 때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영업하는 곳이 없었다. 송지면사무소 주변의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기로 하고 일단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해장국을 파는 식당으로 걷다가 한 식당 문에 애호박찌개라는 메뉴가 적혀 있었다.
수도권에서는 애호박찌개라는 메뉴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전남지방에서는 자주 보게 된다. 특히 광주광역시에는 유명한 맛집 소개 프로에 출연한 애호박찌개 전문점이 많다.
애호박찌개는 국밥 형태로 팔기도 하고, 전골 형태로 파는 곳도 많다. 일단 식당을 들어섰고, 그렇다고 다른 곳을 찾으러 가기에는 버스 시간에 쫓기고 있어서 일단 1인분이 되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1인분도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주문했다.
주문한 지 10분이 채 안 됐을 때 뚝배기에 애호박과 돼지고기가 듬뿍 담긴 애호박찌개가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기에 애호박찌개의 얼큰한 국물이 몸을 따뜻하게 해줬다. 보통 밥을 국과 찌개에 말아서 작은 그릇에 담아 식혀 먹는 게 습관이었지만 애호박찌개의 얼큰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즐기기 위해 국물을 조금씩 떠먹었다. 비로 인해 느꼈던 한기와 새벽부터 이동하며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혼자 즐기는 바닷길과 시골 마을
아직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을 걸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서해랑길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해남 구간의 서해랑길만 이야기한다면 바닷가와 그 주변 마을을 즐기기에 좋다고 말하고 싶다. 서해랑길 2코스와 3코스는 이런 해남 구간의 특징이 잘 느껴지는 구간이다.
2코스를 걷는 2월의 어느 날은 송지면사무소 앞에 작은 장이 서는 날이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송지면사무소 앞에는 트럭 몇 대가 물건을 진열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필품과 농산물, 과일들이 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되고 있었다.
면사무소 주변은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당과 마트, 잡화점 등이 다양하게 들어서 있다. 그중 이불과 한복을 파는 상점, 이용원, 외국인노동자들이 고향이 그리울 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동남아 국가들의 식료품을 파는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불과 한복을 파는 상점과 이용원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상점이었기에 인상적이었다면 외국 식료품을 파는 상점은 이제 한국 사회에 얼마나 많은 외국인이 함께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해줬다.
송지면사무소에서 미학리까지는 작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을 걷는 구간이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한가로이 생각하며 걷기에 좋다. 이후 한동안 산정천 둑길을 따라 해변으로 걷게 된다. 독방 길옆 하천에는 갈대밭과 겨울 철새가 어우러져 있다.
서해랑길 2코스 17.9㎞는 둑길과 하천에 자라고 있는 갈대밭, 겨울 철새, 방조제길, 벼농사를 간척지 논 등이 번갈아 나온다.
겨울의 트레킹 코스는 조금은 외롭다. 농작물이 지키지 않는 논과 밭, 사람이 뜸한 시골길을 걷기 때문이다. 간혹 둑에 올라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을 보는 경우가 아니면 여행자의 발걸음은 빠르다.
봄이 기대되는 서해랑길 3코스
서해랑길 3코스는 14.9㎞ 구간이다. 날씨도 선선하고, 주변의 눈에 띄는 풍경이 많지 않았기에 서해랑길 3코스를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서해랑길 3코스도 2코스와 마찬가지로 작은 포구와 둑방길, 추수가 끝난 논과 밭이 번갈아 나온다.
이 길을 걷는다면 2곳을 즐겼으면 한다.
첫 번째는 관두산 둘레길이다. 둘레길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둘레길이 어딘가 주변을 걷는 길이라는 의미기 때문에 관두산 둘레길이라고 말하겠다. 1km 조금 넘는 거리인 관두산 둘레길은 봄부터 가을까지 울창한 숲을 즐길 수 있을 거 같았다. 바닷가 길을 걸을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햇살보다 바닷물에 반사되는 열에 사람이 지치게 된다. 하지만 관두산 둘레길은 한참을 걷다가 들어서면 울창한 숲이 햇살을 막아줘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특히 관두산에는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풍혈이 있는데 그 주변을 걸을 때는 한기가 느껴지기 때문에 트레커들이 더위를 피하기에 좋은 장소다. 또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서해안 풍경도 예쁠 거 같았다.
걷다가 꼭 즐겨야 할 두 번째 장소는 고천암자연생태공원이다.
철새들이 찾는 담수호가 곁에 있는 고천암자연생태공원은 봄부터 방문할 여행자들을 맞이할 준비에 바빴다.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와 깔끔한 화장실, 잘 관리된 잔디밭이 있다. 관리사무소겸 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센터도 있어서 혹시 핸드폰 배터리가 없다면 충전하고 걸을 수도 있다.
김종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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