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가 행궁동과 고등동에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를 시행했으나 참여도가 저조한 가운데 2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행리단길에 외국어 간판이 설치돼 있다. 임채운기자
수원시가 행궁동과 고등동에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를 시행했으나 참여도가 저조한 가운데 2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행리단길에 외국어 간판이 설치돼 있다. 임채운기자

 

수원시가 지난해부터 보조금을 지원해 외국어 간판을 단 소상공인들에게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도록 지속적으로 독려하고 있지만, 실제로 간판을 교체한 사업주는 없는 것으로 확인돼 사업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외국인들과 젊은 층이 밀집한 상권에 한글 간판 교체를 독려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6일 수원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8월부터 이달까지 4차례에 걸쳐 ‘아름다운 한글 간판 만들기’ 시범사업 공모를 진행했다.

한글을 표기하지 않은 외국어 간판을 사용하는 행궁동, 고등동 소재의 가게를 대상으로 한다.

사업 심사를 통과하면 간판 교체에 필요한 보조금으로 최대 2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외국어 간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잇따르는 요즘 시에서 한글 간판을 독려한다는 의미로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의 4차례에 걸친 공고에도 지원 신청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는 같은 건물에 입점한 업소에서 동시에 사업을 신청하면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조건도 내걸었으나, 접수가 이달 19일 만료된 가장 최근 공고에서도 신청자를 모집하지 못했다.

수원시가 행궁동과 고등동에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를 시행했으나 참여도가 저조한 가운데 2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행리단길에 외국어 간판이 설치돼 있다. 임채운기자
수원시가 행궁동과 고등동에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를 시행했으나 참여도가 저조한 가운데 2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행리단길에 외국어 간판이 설치돼 있다. 임채운기자

실제로 지원 대상인 행궁동과 고등동 가게마다 주 고객이 젊은 층과 외국인으로 이뤄져 있어 외국어 간판을 유지하겠다는 업주들이 대다수였다.

일본식 꼬치 가게 사장 A씨는 "지원 사업을 알았다고 해도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에 새 간판을 주문했는데 일본어로 된 간판을 주문 제작했다"고 말했다.

영어 간판의 카페 사장 B씨는 "해외 분위기에 맞춰 내부 인테리어를 꾸며 외국어 간판이 손님들을 모으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나"고 웃었다.

중국인이 다수 거주해 한자로 된 간판이 즐비한 고등동에서도 "손님 대다수가 중국인인데 왜 한글 간판으로 바꿔야 하나"는 푸념이 나왔다.

한 카페는 간판부터 안내문까지 모두 영어로만 표기돼 있었는데, SNS에 카페를 다녀온 사진을 공유하는 젊은 층의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 이 카페의 마케팅 방식이었다.

이 카페 직원은 "카페 일을 하면서 화성시에서도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주 고객이 어르신들이어서 일부러 한글 간판을 달아놨다"며 "무조건 한글 간판을 추구하기보다는 가게별로 어울리는 간판을 다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업주들의 우려에도 시는 다음 달 대상지를 확대해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SNS 홍보 등을 통해 간판 교체 희망자를 모집했으나 대상지가 적어 모집 인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추가 모집 때도 희망자가 없다면 다른 사업으로 변경할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수원시가 행궁동과 고등동에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를 시행했으나 참여도가 저조한 가운데 2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행리단길에 외국어 간판이 설치돼 있다. 임채운기자
수원시가 행궁동과 고등동에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를 시행했으나 참여도가 저조한 가운데 2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행리단길에 외국어 간판이 설치돼 있다. 임채운기자

최근 들어 외국어 간판이 남발한다는 문제 제기가 전국적으로 나온다는 이유에서 시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간판이 그 시대상에서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만큼 소비 트렌드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기도민 C(29·여)씨도 "기존 매장의 정체성까지 흔들면서 외국어 간판을 바꾸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요즘 젊은 세대의 소비 트렌드는 ‘맛’보다는 ‘감성’과 ‘체험’이다. 모국어가 주는 직관성보다는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외국어 간판을 사용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C씨는 이어 "원래 있던 가게의 간판을 바꾸기보단 새로 입점하는 브랜드나 가게가 한글 간판을 사용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향도 한글 간판을 독려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는 외국어 간판의 존치 필요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외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젊은 층 간 정보 격차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나 관광지에 한글로 간판을 교체하는 게 과연 효과적일지는 의문이 든다"며 "간판에 외국인들 본인 국가의 언어가 적혀 있으면 친숙함이 생기는 효과가 있을 것이며 이는 지역 상권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경민·최영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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