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잡이 도중 북한 경비정에 피랍돼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어부가 3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인천지법 형사13부(송경근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12년 넘게 복역한 정규용(70)씨에 대한 재심에서 26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최소 18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조사 도중 가혹행위가 있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의 경찰 신문 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자료는 증거 능력이 없거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선고 직후 정씨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감사합니다”는 말만 연발했다. 함께 법정을 찾은 부인 연모(66)씨는 “기쁜 날이다. 남편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을 살았는지 모른다”며 울먹였다.

재판장인 송 판사는 “과거 권위주의와 독재정권 시절에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30여년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정씨에게 법원을 대표해 사과드리고 사법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1968년 당시 26세이던 정씨는 서해 소연평도 근해에서 조기를 잡다 납북된 뒤 약 5개월 만에 돌아왔다. 이후 8년 뒤 경찰은 정씨를 간첩 혐의로 연행해갔다.

정씨는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했고 결국 1976년 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1989년 풀려날 때까지 정씨는 12년11개월간 옥살이를 했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 정씨를 고문한 장본인으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지목돼 눈길을 끌었다.

정씨는 이씨에 대해 “오금에 몽둥이를 끼워 꿇어 앉으라고 한 뒤 80kg이나 되는 거구로 허벅지를 밟아 고통이 말도 못할 정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까매져 한동안 걷지 못하고 기어 다녀야 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지난 5일 열린 정씨 공판에 이씨의 증인 출석 계획이 잡혀 있었으나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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