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사람] 한동훈이 만난 이국종 아주대 의대 중증외상센터장

   
 

2년4개월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이국종 아주대학교 교수(아주대 의대 중증외상센터장)는 이 코너의 첫 손님이다. 나는 그를 2011년 5월 인터뷰했었다. 이번 만남은 지난번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이 교수는 장소부터 편한 곳으로 골라줬다. 병원 부속건물 일식집에서 알탕을 시켜놓고, 주거니 받거니 했다. 말이 가팔라지면 숨을 고랐다. 처지면 들여마셨다. 때론 말과 말이 뒤엉켰지만, 1시간30분이면 충분했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 이국종’의 삶도 맛보기로 엿볼 수 있었으니….(이 교수는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느라 알탕을 반 이상 남겼다) 지난번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응급집중치료실에서 만난 탓에 ‘그는 어떤 사람인가’ 같은 류(類)의 질문은 꺼내볼 엄두도 못냈다.

―권역별 외상센터 지정 축하한다. 꿈은 이룬건가.

“바닥이 다져진 거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려면 근거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이번에 그것이 된 것이다. 중중외상을 민간에서 하려면 근거가 없다. 지난 10년간 병원에 중중외상은 공익적 차원이라고 들이댔지만, 사실 지쳐서 이번에 안되면 포기하려고 했다. 안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가려고 했다. 오히려 부담이 생겼다. 지금도 만만치 않다.”

―바닥이라, 궁극적인 꿈은 어디까지인가.

“월드 스탠더드다. 전 세계 톱 클래스는 아니어도 월드 스탠더드에 근접하고 싶다. ‘레벨1트라우마센터’라는 게 있다.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연간 입원환자 숫자가 최소 1천200명이다. 우리는 1천600~2천명 정도다. 진짜 중증환자는 1천200명 중에 250명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300명 정도니까 약간 넘는 수준이다. 최소 수준을 간신히 채우고 있다. 몇 몇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굉장히 부족한 인력과 장비를 갖고 결사대 처럼해서 간신히 월드 스탠더드 최소 기준을 맞추고 있다. 그 정도 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외상센터는 레벨1을 포기해야 한다. 왜냐면 그 정도는 봐야 실력이 는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나.

“좋은 분(의사)들을 데려올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는 병원 차원에서 더 고용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우선 5년동안 인건비를 지급해준다고 하니 인력을 보강할 수 있다. 현재는 외과 3명, 정형외가 1명, 신경외과 1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응급의학, 흉부, 정형, 신경과 등등 교수진만 21명을 추가로 초빙할 예정이다. 외과는 앞으로 7명을 더 뽑을 것이다.”

―권역별 외상센터는 언제 오픈하나.

“오는 11월 목표료 병원 3층 중환자실을 리모델링한다. 중환자실의 병상 수를 20개 늘릴 것이다. 11월 말에 현판식을 할 것이다. 복지부에 제출한 제안서대로만 간다면 연간 경기도민 300명을 더 살릴 수 있다.”(이 교수는 병상 1개당 연간 3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인력풀은 충분한가.

“외과가 문제다. 다른 과는 경쟁할 정도다. 외과는 하려는 사람이 없고 워낙 소수라서…. 여기 있던 의사가 모 대학병원 대장항문 파트로 갔다. 그 곳에서 (그를)좋아한다. 환자가 다 살아난다고…. 워낙 중한 환자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합병증이 있으면 가볍게 처리한다. 비유하자면 프리미어리그 선수가 동네 축구에서 뛰는 것이다.”

―센터가 문을 열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나.

“그럴 것이다. 현재 3명이 떡을 쳐서 중증만 연간 300명을 보니까. 하지만 7~10명이 된다고 1천명까지 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무리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태로 계속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지금보다는 상당히 많이 늘어날 것이다.”

―경기도 외상센터는 어떻게 되고 있나.(경기도는 권역별 외상센터로 지정되면 경기도 외상센터 건립에 필요한 예산 240억원을 별도로 지원해주기로 한 바 있다)

“설계도면을 그리고 있다. 의료진의 입장에서 냉정히 보면, 복지부에서 내민 가이드라인대로만 하면 편하다. 의사 30명이 병상 60개만 지키면 의사들은 편하다. 스태프만 30명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웬만한 일반 병원도 30명이 안된다. 물론 중환자라서 더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복지부에서도 이 정도면 알맞다고 생각하고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는 우리가 더 할 수 있다고 보고, 더 큰 전장에 밀어넣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40병상이면 1년에 중증외상환자만 1천명 넘게 볼 수 있다.”

―경기도 외상센터는 언제 문을 여나.

“(예정대로라면) 2~3년 후로 보고 있다. 경기도 외상센터의 규모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월드 스탠더드 트라우마센터로 내놔도 될 정도다. 복지부에도 그런 얘기를 했다. 인력적인 면이 달려서 그렇지, 시설만 놓고보면 트리플A는 아니어도 싱글A는 될 수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감사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감사하고, 경기도에 감사하고, 소방관에게도 감사한다고 했다. 찰나(刹那)에 감사할 일이 많았던 덕인지 그의 표정은 지난번보다는 조금은 평온해보였다.

―앞으로 정부와 싸울 일이 많겠다.

“개인적으로 복지부가 굉장히 고맙다. 작년엔 떨어질만 하니까 떨어진 것이다. 부족한 것도 많았다. 개선한다고 했지만 얼마나 했겠나. 그리고 이번에 경쟁한 병원들이 우리보다 결코 못한 곳이 아니다. 휴먼 리소스는 우리와 비교가 안된다. 석(해균)선장 효과라고 폄훼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도 일부는 사실이다. 솔직히 후광도 많이 봤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은데도 복지부에서 지정해준 데는 뜻이 있을 것이다. 더 잘했으면 하는 믿음 등등…. 굉장히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아니라)병원하고 싸워야 한다.”

―경기도소방항공대장이 이 교수를 높이 평가하더라.

“경기도 공무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중앙부처, 군(軍) 등과도 상대하는데 중앙·서울의 예산은 경기도와 비교도 안된다. 장비, 시설 등도 그렇다. 그런데 경기도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것들이 많다. 무한돌봄이 그렇고, 헬기로 환자를 이송한다고 했을 때 다른 지자체에서 ‘또라이’라고 비웃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 만큼 해왔다. 얼마 전 군 부대에서 새벽 5시에 수류탄 사고가 발생했는데 8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 간다고 했다. 그런데, 군에서 헬기로 보낸다고 하더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연락을 해보니 기상이 안 좋아서 취소됐다며 앰블런스로 보내겠다고 했다. 오다가 죽는다. 그래서 경기소방으로 날라갔다. 비행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핑계는 엄청나게 많다. 한 마디에 안할 수 있다. 그런데 경기소방은 도와줬다. 경기소방이 대단한 것은 아랫 사람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장이 직접 비행한다.”

   
 

이국종 교수는 그 사이 많은 성취를 이뤄냈다. 권역별 중증외상센터를 유치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지난해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메디컬 드라마 ‘골든타임’은 그를 모델로 삼았다. EBS는 그를 명의(名醫) 반열에 올려 놓았다. 인간 이국종의 삶은 어떨까? 그는 록 스피릿(Rock Spirit)이다. 아마추어 베이스 기타리스트 이국종이 활약하고 있는 아주대병원 전공의 밴드 ‘어레스트’는 동종 업계 밴드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최근에 선 무대에서는 시나위가 편곡한 강남스타일을 연주했다. 그는 버스 끊긴 날에는 대리운전기사 전용 차량을 이용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밴드 활동은 어떤가.

“요즘은 힘들다. 학부에 식스라인스라는 밴드가 있는데 연주자들이 전공의가 되면서 악기를 놔버려서 새로 꾸렸다.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경연대회때는 새벽 2시에 만나서 연습했다. 한 달 준비했는데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다. 그래도 하기로 한 것이니까 했다. 경기지역 예산에만 15개 팀이 참가했는데 대상 받았다. 그냥 연습하면 동기가 없어서 2004년부터는 개원기념일 행사때 연주한다. 원래는 세컨드였는데 (연습을 못해서) 베이스로 도망갔다.”

―홍대 클럽 같은 곳에도 가겠다.

“전에는 1년에 몇 번 가곤 했는데 지금은 못간다.”

―퇴근은 제때 하나.

“잘 못한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팀원 다 그렇다.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가려고 하는 데 못간다. 언젠가는 집이 낯설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당직실이나 의무실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직원들과 회식을 하지 않는다. 우리끼리는 일할 때 자주보니까 그걸로 족하다. 왜냐면 그거(회식)까지 하자고 하면 그나마 가끔 집에 갈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된다.”

―불편하지 않나.

“(집에) 가면 더 불편한 것 같다.”

―자녀들이 원망하겠다.(이 교수는 슬하에 아들만 둘이다)

“큰 애가 중학생인데 아버지 닮아서 공부 못한다.”

―식사는 어디서 하나.

“구내식당이나 햇반으로 해결한다. 구내식당은 항우도강탕(군인들이 고깃덩어리 없는 소고기 국을 빗대 지은 말이다)이 나온다. 그나마 있는 재료를 다 쓰는 야식은 먹을만 한다.”

―요즘도 대리운전기사 차량 이용하나.

“한동안 자주 이용했는데, 요즘은 아예 퇴근을 못해서 이용하지 못한다. 교보타워 사거리 앞은 밤새 불야성이다. 양성화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골프는.

“골프채는 1995년부터 잡았는 데 외상을 시작하면서 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의사들이 골프치면 유혹을 많이 받는다. 세상에 공짜 골프가 있나? 더 큰 이유는 왠만한 일을 하고 있어도 콜 받으면 와야하는데 골프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도중에 나오기 힘들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 교수가 명의 반열에 오른 소식은 처(妻)에게 들었다. 지난 주말에 방영된 EBS의 명의 프로그램에 나왔다며 ‘인상이 차갑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 교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십중팔구 저승사자를 만나고 온 느낌이라고 한다. 핏기없는 얼굴, 단호한 표정, 냉정한 어투…. 외형만 놓고보면 딱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지키고 있는 생신(生神)과 사신(死神)이 절묘하게 포개진 모습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 교수는 급하지만 세심하고, 투박하지만 세련됐고, 냉정한 것 같지만 따듯한 면이 있다. 처와 ‘EBS <명의 3.0> 골든타임. 운명의 1시간 ―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 편’을 다시 봐야 겠다.

한동훈 정치부장/donghun@joongboo.com

사진=강제원기자/jewo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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