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복잡한 세무 업무를 해결만 해주는게 아니라 국가에 대한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찾아주는게 즐거워요.”

변리사, 변호사, 관세사, 세무사, 회계사, 법무사, 건축사, 감정평가사 등이 우리나라 8대 전문직이다.

최근 이들 전문직들이 갖는 연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전문직 연봉에 대한 검색어가 유명포털사이트의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연봉이 높아서 전문직을 선택한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일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전문직 종사자들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고 또 특별한 의무감과 열정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참세무법인 이규익(38) 대표 세무사는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일을 하는 세무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고객들이 어려워하던 세법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주는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정부로부터 세무업무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세무사의 꿈을 가졌던건 아니다.

대학 2학년때 우연한 기회를 통해 세무사라는 직업을 접하게 된 그는 “국민으로서 가져야할 권리와 의무를 찾는일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산수를 좋아했던 아이

1976년 의정부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어렸을때부터 숫자를 좋아했다.

초등학교시절 산수를 좋아해 매일 다른책 대신 산수책을 끼고 살았을 정도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때 한쪽에서 산수공부를 할 정도로 숫자를 좋아하던 아이다.

“어릴적에 산수문제가 꼭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었죠. 그래서 재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매달려서 그런가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고 장난쳤던 기억이 많이 없어요”

하지만 숫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복잡한 세법이 이때부터 천직이 될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적 이 대표의 꿈은 의사였다.

의사를 꿈꾸며 평범하게 자라던 아이는 고교졸업 후 전혀 다른길로 들어선다.

한국항공대학교에서 항공경영학을 전공했다.

항공대학에 들어간 이유는 졸업 후 진로를 항공사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난그러나 세무사가 됐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해 학교를 다니던 어느날이다.

건축사가 되겠다며 매일같이 독서실만 다니던 한 선배를 만나 직업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 선배는 건축사를 꿈꾸는 이유에 대해 사람을 위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건축은 모든 관점이 사람을 위한 일들이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이 생활을 하잖아. 그게 전문직의 매력이지. 사람을 위한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것. 직업 선택에 있어 안정적인 수입도 중요하겠지만 보람된 일을 하는게 그게 사람사는 세상에 필요한게 아닐까”

그 선배가 했던 이 말이 일반 회사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던 이 대표의 머리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어떤 일이든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직을 꿈 꾸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숫자 계산에 밝았던 자신의 장점을 활용한 전문직.

그래서 선택한게 세무사다. 세무사 역시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국민이라면 세금납부에 대한 의무가 있고 그 의무안에서 정당한 권리 역시 찾아야 한다.

때문에 사회가 변화할 수록 세무사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배워야 할게 산더미처럼 많았고 단순히 숫자계산이 주가 되는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평범하고 쉽게 살 수 있는데 왜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고생길을 들어가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처음 세무사가 되겠다고 공부를 시작했을때 주변에서 그냥 쉽게 가자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시험도 어렵고 시험에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해당분야에서 이름을 날릴만큼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본거죠. 맞는말이긴 했죠. 갑자기 진로를 바꾸게 된 거니까요. 그래도 부딪쳐보자라고 마음 먹었어요”

▶3번의 도전

대학 2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우선 시험에 합격해 정당한 자격을 갖춰야 정식 세무사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다.

2000년 처음으로 세무사 자격시험에 응시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의욕이 앞섰다.

경험하지못한 세계를 경험도 하고 싶었고 “혹시 될지 알아?”라는 생각이 시험장으로 이끌었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면서 이게 세무사구나라는 생각이 뒷통수를 때리는 느낌이었죠. 세무사를 꿈만 꾸고 있었구나라는 생각만들고 눈앞이 캄캄했어요.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라며 후회만 했죠.”

첫 시험의 좌절이 오기를 만들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접고 오전 6시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밥먹는 시간만 빼고 책상앞에서 살았다.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철저하게 공부에만 매달리자 친구들이 사법고시생이냐며 놀리기도 했다.

그만큼 열정을 쏟고 공부하면 분명히 되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1년에 한번씩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떨어지면 또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첫 시험에 떨어지고 1년이 지났다.

2001년, 두번째 세무사 자격 시험에 도전했다.

한우물만 파면 물이 나온다고 했던가? 충분히 합격 하고 남을 정도로 평균 점수가 좋게 나왔다.

그러나 결국 또 좌절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이번에는 세무사 자격 시험 가운데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진짜 열이 받더라구요. 다른 과목들은 충분히 평균 점수 이상을 냈는데 영어 한과목에서 발목이 잡혔죠. 이번에는 영어를 너무 우숩게 생각한게 착오였죠. 진짜 쉽게 되는게 없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영어때문에 또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죠.”

정말 싫었다.

악착같이 공부에만 매달린 1년이 영어과목 하나로 물거품이 됐다.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죽어도 독서실에서 죽어야지라고 이를 악물며 오기로 또 다시 도전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결국 현실이 됐다.

2002년 그토록 바라던 세무사 시험 1차에 합격했다.

다음해에 진행된 2차 시험에도 합격해 대한민국 정식 세무사 자격을 갖췄다.

“시험에 합격했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제 독서실을 안가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 올랐어요. 유난떤다고 얘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집 보다 독서실이 더 친숙할 정도로 살았으니까요.”

2003년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대한민국 세무고수를 만나다.

2004년, 이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규익 세무·회계사무소 간판을 달고 본격적인 세무사일을 시작했다.

무엇이든 주어진 일이라면 다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가득찼다.

고객들을 만나 그들이 잘 모르고 어려워하는 세무업무에 대해 설명하며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벽에 부딪쳤다.

사회초년생이 자신감만 갖고 할 수 있는 세무사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경험이 부족했다.

세무업무는 다양한 경험이 요구되는 전문직 중 하나다.

세금납부와 관련해 전문적으로 알고 있고 그 업무를 대행해주는 직업이 세무사라는 직업이지만 분야가 여러가지로 나눠진다.

개인 사업자의 경우 회사의 장부를 기재해 주는 일도 하고, 납세자의 세금 대리 신고, 납부, 관리도 맡는다.

개인이나 기업의 회계 장부를 작성하기도 한다.

매년마다 세법이 달라져 세금에 관한 공부 또한 게을리 할 수 없다.

바뀐 법을 제대로 알아야 고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항상 세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기업 진단, 세금과오납에 대한 이의 신청, 세무 조사 대응 등은 가장 중요한 업무다.

당연히 사회초년생이 이 많은 업무를 경험해봤을리 없다.

그래서 끝났다고 생각했던 공부는 계속해야 했고 가장 중요한 경험을 쌓는일도 시급했다.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전문직의 세계에 대한 냉혹함도 배웠다.

그렇게 또 다시 1년이 지난 어느날.

선배의 소개로 대한민국 세무사업계의 고수를 만났다.

그 고수는 바로 참세무법인 본점 대표이사인 채상병 세무사다.

국세청에서 15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일해온 채 대표는 1983년 세무사일을 시작해 10년만에 혼자서 국세청 발표 전국세무사 소득순위 4위,이듬해는 소득순위 2위를 차지한 인물이다.

2004년에는 전국세무사 소득 순위1위, 이 후에도 5천여명의 전국 세무사 가운데 항상 다섯손가락에 이름을 올리는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언론 등에서도 채 대표에 대한 얘기를 다룬 기사가 한두개가 아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당연히 나올 수 없다.

대선배이자 최고의 맨토를 만난 이 대표는 이때부터 진짜 세무사를 배웠다.

“정말 감사한 분이죠.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일깨워주신분이니까요. 많은걸 배웠어요. 자신감에 경험까지 쌓이니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죠.”

채 대표와의 인연이 이 대표가 승승장구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 셈이다.

“국가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는게 당연한 일이죠. 그래야 납부된 세금으로 정부가 국가를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겪으면 안되잖아요. 당연한 권리를 찾고 그안에서 의무 역시 충실해야죠. 세무사는 그런 일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게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의 말속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세무사다.

송주현기자/atia@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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