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에 인권규약 이행실태의견서를 내면서 초안에 있던 내용을 대폭 삭제 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권위는 독립적 인권기구이며 정부와 시민단체보다도 더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단체이다. 그러나 수정안의 내용을 보면 초안에서 무려 28개 쟁점을 삭제하고 최종적으로 31개 항목만 남겼다. 특히 집회·시위의 지나친 공권력 개입이나 성소수자 차별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은 대거 누락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청와대의 언론인 고소, 통합진보당 해산 등 인권 후퇴로 보일 수 있는 내용도 대거 삭제하고 우리 정부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내용도 다수 축소했다.

인권위는 내용이 너무 방대해 간추리기 위해 쟁점을 줄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삭제된 쟁점들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인권위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국내 인권침해 상황을 유엔에 정확히 알려 문제의 예방과 해결,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의적 해석을 통해 정부에 부담이 될 만한 사항들은 모두 삭제했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거나 혹은 정부의 눈치를 본 건 아닌지 의문이다. 국내 인권 사항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알려야 하는 기본 의무를 저버리고 인권 후퇴 부분을 은폐, 조작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의 인권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달 25일 국제엠네스티에서 ‘박근혜정부 들어 인권이 전반적 후퇴했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인권부문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는 국가경쟁력을 약화키는 요인이다. 또한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지난해 두 차례 ‘등급 보류’ 수모를 당했고, 최근에는 불투명한 인권위원 선정 과정 등을 이유로 등급 강등을 경고 받는 등 인권 후진국으로 전락할 상황에 놓여 있다. ICC가 등급 심사를 앞두고 인권위원 선정 방식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는데도 ‘밀실 선정’ 논란까지 빚어져 인권단체들조차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16일 ICC로부터 다시 등급심사를 받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전망이 부정적이다.

인권위는 정부를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 특성 상 정부에 대해 적절한 견제를 해야 하며 이를 통해 건강한 긴장관계가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국가기관보다도 정부가 불편해할 만한 쓴소리를 내놓아야 한다. 인권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성찰이 시급하다. 본래의 사명과 취지,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에 대한 반성과 혁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그를 다루는 인권위가 객관성과 중립, 정당한 절차와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면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 주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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