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 로던 지음 | 다른세상 | 584페이지



BC 1000년경 곡물은 도시, 국가, 군대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중량 대비 영양소의 비율이 가장 높고 저장이 용이해 부의 축적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곡물이 없었다면 페르시아나 로마 같은 제국의 탄생 역시 불가능했을 정도로 요리와 음식은 인류의 문명사에 실로 막강한 영향을 끼쳤다.

‘탐식의 시대’는 ‘요리와 음식’을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인류가 더 나은 음식을 먹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새롭게 만들어낸 요리법들이 곧 문명의 발전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해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전 세계 120개국에 지점을 가진 맥도날드를 비롯해 한국의 롯데리아, 일본의 모스버거, 벨기에의 퀵, 필리핀의 졸리비 등 다양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햄버거의 주재료에 해당하는 흰 빵과 쇠고기는 200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지배층만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 200년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요리의 역사를 살펴볼 때, 1880~1914년은 가장 큰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북유럽 국가들, 유럽의 해외 이주 식민지들, 미국, 일본 등에서 봉급생활을 하는 중산층과 임금을 받는 노동 계층이, 마침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던 식품 가공 산업의 소비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식품 가공 산업은 이들이 즐겨먹는 흰 빵과 쇠고기를 저렴한 값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형성되던 새로운 정치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왕과 귀족이 먹는 고급 요리와 평민이 먹는 하급 요리가 분명히 구분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 많은 이들이 계급에 상관없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보다 개인의 평등과 자립을 더 잘 보여주는 예시는 없었다.

이처럼 요리와 음식의 역사에는 당시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체제, 그리고 나아가 건강과 질병, 윤리와 종교에 대한 신념이 숨어 있다.

저자는 탁월한 관찰력과 폭넓은 정보 수집, ‘요리와 음식’이라는 색다른 렌즈를 통해 문제의 답을 찾아간다.

   
 

독자는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로마·영국 등 한 시대를 호령했던 제국의 흥망성쇠, 이슬람교·불교·기독교 등 주요 종교의 탄생과 확산, 고대의 노예제 사회나 중세의 봉건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을 주요 골자로 한 민주주의 사회로의 이행까지, 인류의 모든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식문화는 19세기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인류가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빈곤과 질병을 걱정하던 인류가 풍요의 병을 걱정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문명사를 기술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날의 식문화가 갖는 의미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제시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식문화를 바라보는 보다 현명하고 올바른 시야를 얻을 수 있다.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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