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운영하던 정육점서 사고...하루 6시간 고된 연습으로 대전예고 진학

   

8년 전 한 방송에서 어린 소녀가 팔꿈치를 이용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왼손의 다섯 손가락과 오른팔의 팔꿈치만으로 피아노를 치던 그 소녀가, 자신의 꿈이 ‘피아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 꽤나 놀라웠다. 그동안 피아노는 손가락으로만 칠 수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소녀가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한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그 후 8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7일 다시 만난 소녀는 ‘팔꿈치 피아니스트’라 불리며 많은 이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최혜연(19) 양이다. 어렸을 때 사고로 한 쪽 손을 잃었지만 운명처럼 피아노를 만났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혜연이의 특별한 손

경북 영덕이 고향인 혜연이는 태어날 때만해도 작고, 예쁜 두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세살이 되던 해 큰 사고가 일어났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정육점에서 고기 자르는 기계에 팔꿈치 아랫부분을 잃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렇게 혜연이에게 조금 특별한 손이 생겼고, 그 손으로 피아노를 친지도 벌써 15년이 다 돼 간다. 15년 전, 그러니까 혜연이가 5살 때 이모가 운영하는 피아노학원에서 처음 피아노를 만나게 됐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니가 먼저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제가 그때 언니를 많이 따라서 언니와 같이 학원에 다니게 됐죠. 하다 보니 피아노 두드리는 소리가 재밌었던 것 같아요. 또 피아노를 칠 때면 금세 행복해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혜연이는 운명처럼 피아노를 만났고, 다섯 개의 손가락과 한 개의 팔꿈치를 가지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6시간의 고된 연습과 노력 끝에 대전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그곳에서 또 한 번의 운명을 만난다. 바로 정은현 교수.

그는 혜연이가 보다 많은 곡들을 칠 수 있도록 편곡 작업을 했다. 또 풍부한 감정 표현, 건반의 강약 조절 등 전문적인 교육을 진행했다.

혜연이는 성장했고, 2011년 ‘제4회 장애인 음악콩쿠르’ 교육부 장관 대상 수상, 2013년 전국 장애 청소년 음악콩쿠르 ‘기적의 오디션’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9월 말에는 방송국의 후원으로 영국왕립음악원을 방문해 영국의 왼손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매카시’를 만나 연주를 진행했고, 올해 초에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 특별장학생으로 합격했다.

#‘팔꿈치’로 희망을 전달하다

혜연이는 요즘 굉장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학업은 물론이고, 꾸준한 연주활동으로 지난 3월 첫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앨범에는 그동안 혜연이가 무대에서 들려주었던 3개의 곡이 담겨 있다. 따뜻하고 정갈하게 편곡된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타이틀로, 풍부한 화성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아름다운 스크리아빈의 작품 ‘왼손을 위한 프렐류드와 녹턴(A.Scriabin Prelude and Nocturne Op.9 For The Left Hand)’을 함께 싣고 있다.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앨범명은 ‘선물’이라 지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어 앨범 이름을 ‘선물’이라고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셨으면 좋겠어요.“

다음 앨범에는 작곡도 직접 할 생각이다.

”학교에서 작곡, 편곡, 실용음악 수업을 받고 있어요. 다음 앨범에는 자작곡을 실을 생각입니다.“

독주회도 준비 중이다.

”2013년 11월24일 첫 독주회를 가졌는데 그때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너무 떨렸고, 너무 설렜죠. 그리고 지난해 두 번째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올해도 준비하고 있어요. 보다 성장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죠.“

또 틈틈이 방송 출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만도 MBC 휴먼다큐 사랑이 좋다, KBS 사랑의 가족·아침마당, SBS 스타킹·희망캠페인 등 다수의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혜연이에게 롤모델이 누구인지 물었다. “현정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했다.

“임현정 피아니스트는 무대에 오를 때 검은색 복장, 자연스러운 머리를 해요. 보통 화려한 의상을 입는 다른 연주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죠. 그런 모습들이 많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혜연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에게는 그동안 많은 기회가 주어졌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친구들은 기회를 얻지 못해 자신의 꿈을 포기 하고 있어요. 대학 입시전형만 보더라도 특별전형 임에도 불구하고 지정곡을 해야 하는 상황이죠. 저만해도 연주하지 못하는 곡들이 많은데 말이예요. 참 아쉬운 부분이죠.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 친구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싶습니다.”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사진=이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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