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건강해야 인간이 행복하다
자연이 건강해야 인간이 행복하다
  • 현종
  • 기사입력 2016.05.30 20:10
  • 최종수정 2016.05.3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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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는 많은 국가와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곳이나 일 년 열두 달 계절과 기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라 사계절의 변화를 보며 자연을 즐기고 산다.

3월이면 온 산천에 앞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알고 생명의 숭고함을 느낀다. 꽃도 피는 순서가 있어 눈 속에서 피는 복수초를 시작으로 매화, 노루귀, 산수유, 개나리, 할미꽃 등이 피고 5월에는 찔레꽃이 한창 피어있다. 조금 있으면 자줏빛 붓꽃이 예쁘게 필 것이고 칡꽃도 골짜기마다 피게 될 것이다.

새소리들도 아름답다. 봄눈이 녹을 때쯤이면 울음소리가 경쾌해지면서 풀국새 노래가 들린다.

귀신새 울음소리는 새벽에 들리면서 두견새도 오고 소쩍새가 밤새 우는 것을 듣고 즐기노라면 어느새 봄이가고 여름이 온다. 5월의 끝자락에는 휘바람새와 호반새의 아름다운 노래가 하루 종일 들린다. 지금은 행운을 불러 온다는 파랑새가 하늘을 날며 노래하고 있다. 누가 그리도 어울리게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뻐꾸기가 쿠궁쿠궁 목이 메이게 짝을 찾고 있다. 새벽 동틀 때부터 밤이 새도록 각자의 사연을 갖고 울고 불고 노래한다. 우리 절에 오는 사람들은 천당이든 극락이든 바로 이런 곳일 거라고 좋아들한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너무 많이 달라졌다. 새는 묵은 둥지에 다시 들지 않기에 새집들을 깨끗이 청소해 주고 기다렸는데 한 군데도 들지 않았다. 짝을 맺은 새들이 둥지 틀 곳을 찾아 온 절을 헤집고 다니는데 올해는 너무 많이 줄어들어 보인다. 그 많았던 새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다행인 것은 개체수는 줄었지만 올 새들은 다 온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젠 여름새인 꾀꼬리를 기다리고 있다.

예전 이맘 때쯤에는 현덕사 언덕길을 오르내릴 때 몇 번이나 차에서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었다.

왜냐하면 차 바퀴에 치어 죽은 뱀이나 개구리, 고라니, 다람쥐 등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닌 작은 동식물도 이 땅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 갈 권리가 있지만 인간의 욕망 앞에 불행하게도 죽어간 불쌍한 영혼들이기에 짧은 기도와 함께 영원히 편히 쉴 수있는 자연의 품으로 돌려 보내 주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까지 이 길에서 동물들의 죽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잘 피하면서 사는 것인지 개체수가 줄고 사라져서 차에 치이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다.

얼마 전에 몇몇이 모여 누군가가 가지고 온 잘 마른 미역귀를 먹었다. 짭쪼롬 하면서도 씹을수록 달짝지근한 맛을 느끼며 다들 좋아했다. 그런데 모양도 맛도 옛것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두께가 아주 얇아져 있었다. 어릴 때 먹었던 것은 바짝 말라도 도톰한게 향기가 입안 가득했었다. 어쩌면 해양환경도 심각한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가까운 주문진 항구에 가면 갓 잡아 온 생선들로 어부와 장사하는 사람들과 손님들로 왁자지껄해 생기가 넘쳐 났었다. 그런데 바다도 말라버려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으니 요즘 그런 모습을 보기도 쉽지 않다.

모두 인과응보라 생각된다. 바다의 백화 현상으로 물고기와 조개류, 해초류가 죽어 간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읽게되고 육지의 온갖 폐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가고 무분별한 남획으로 치어가 자라기도 전에 싹쓸이로 잡은 이유이기도하다.

조금 있으면 여름 장마철이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온 산천에 뿌려진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가 빗물에 씻겨 강물에 녹아 바다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결국 바다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절 현덕사 옆에도 작은 계곡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재가 흔하게 살았다. 비가 오거나 장마철에는 물을 따라 마당의 수돗가에도 가재가 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난 봄날에 오직 한 마리만 보았을 뿐이다. 자연환경이 건강해야 그 품에서 우리들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 갈수 있을 것인데...

한 길 바다를 메워도 한 치 사람 마음 속은 메울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삼독심을 제일 경계하셨다. '탐·진·치(탐욕, 진에, 우치)'이다.

한없는 탐욕이 자기를 망치고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뉴스를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고 있다. 화를 못 참고 분노를 끝없이 폭발시키는 분노 조절 장애자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렇게 사회가 혼탁한 건 사람들이 무지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이 어리석음을 벗어나려면 자기 성찰을 통해 무명을 밝혀 지혜를 증득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탐진치를 소멸하는 부처님 공부에 힘쓴다면 자기 편리함과 욕심을 줄일 수 있다. 욕심없이 자연 파괴를 덜하는 이가 진정한 환경지킴이니까 탐진치 소멸로 예쁜 꽃과 고운 새소리를 자손대대 즐기게 해야할 일, 그것이 곧, 바로 우리들의 일이다.

현종스님(대한불교 조계종 현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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